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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수도회는 꼰솔라따 성모님의 영성 아래에서 시작됐습니다.  설립자이신 복자 알라마노 신부님은 성모님께서 우리의 보호자가 되시고, 우리 선교활동의 모범이 되어주시기를 바랐습니다.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이름만 그렇게 짓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 그러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성모님의 진정한 자녀가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모님을 깊이 알아야 하고 사랑해야만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알라마노 신부님이 46년 동안 주임 신부로 일했던 이탈리아 북부 지역의 투린에 있는 꼰솔라따 성지의 역사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꼰솔라따 성모님 성화의 의미에 대해서도 여러분에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1901년 알라마노 신부님이 우리 수도회를 설립했을 때, 그는 이미 꼰솔라따 성지에서 20년 동안 일하고 있었습니다.

 

꼰솔라따 성모님께서는 투린 사람들의 가슴 속에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그는 열정적으로 성지에 자신을 헌신했습니다. 그에게는 성지가 영성적인 아름다움과 물질적인 아름다움을 모두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습니다. 이 성지의 기원과 꼰솔라따 성모님에 대한 신심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 4세기경, 투린의 첫 번째 주교였던 성 마시모와 함께 시작됩니다. 꼰솔라따 성모님의 첫 번째 성화(聖畵)는 성 에우세비오에 의해 팔레스타인에서부터 운반되어 왔습니다. 성 마시모 주교님은 성화를 받고, 사람들이 공경할 수 있도록 성 안드레아 성당에 놓았습니다. 그러나 8세기 말에, 성상 파괴주의 이단들이 많은 이미지와 조각상들을 파괴했습니다. 이들은 구약성경에서는 성상(聖像)을 만드는 것을 금지했다는 주장 아래에 그러한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꼰솔라따 성모님의 성화가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비밀 장소에 감추어졌으며, 그곳은 한 세기가 지나도록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역사적인 일화에 따르면, 알두인(Alduin)왕이 심하게 아팠을 때 환시를 보았다고 합니다. 그 환시에서, 성모님께서는 그에게 투린에 성당을 지으라고 말했습니다. 왕이 기적적으로 회복된 뒤 성당 건축을 명령했습니다. 1014년, 기초를 파던 도중, 일꾼들이 전혀 손상되지 않은 꼰솔라따 성모님의 서화를 발견했습니다. 그 것으로 인하여 꼰솔라따 성모님에 대한 신심은 점점 더 강력해졌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꼰솔라따 성지는 내전 중에 파괴됐고, 성화는 다시 사라졌습니다. 1104년, 프랑스 브리앙성의 한 장님이 환시를 보았는데, 그 내용은 성모님께서 그를 투린으로 보내 성화를 찾으라고 시키셨다는 것입니다. 옛 성당이 지어졌던 장소를 파보니, 그곳에서 성화가 나왔습니다. 이 사건 이후 1104년 6월 29일, 장님이었던 그는 시력을 회복했고, 투린 사람들은 꼰솔라따 성모님에 대한 신심을 회복했습니다. 그때부터 6월 20일은 꼰솔라따 성모님 대축일이 됐습니다. 원래의 성화는 분실되어서 지금 있는 것은 14세기에 그려진 것입니다. 신심은 계속되었고, 1706년에는 투린 사람들이 프랑스 군대의 침략에서 해방된 후, 꼰솔라따 성모님을 시(市)의 보호자로 선언했습니다. 복자 알라마노 신부님은 꼰솔라따 성모님의 성화 앞에서 우리 수도회의 설립에 대한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도 역시 아주 심각한 병으로부터 기적적으로 회복됐습니다. 비록 그가 자신의 회복을 꼰솔라따 성모님 덕분으로 돌리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알라마노 신부님이 성모님을 너무나 지극히 사랑했기에 성모님께서 신부님을 치료해주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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