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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8 11:55

매혹적인 발자취...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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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적인 발자취... 3

강 디에고 신부 IMC


p. 19 A 케냐 2004.jpg  p. 19 B 스페인 2007.jpg 


p. 19 C 몽골 2010.jpg  p. 19 D 폴란드 2013.jpg



한국에서의 우리의 선교 사업에 관한 마지막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하느님을 찬미하는 시선으로 역사를 돌이켜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하느님을 찬미할 때, 우리는 하느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삶 안에 하느님께서 얼마나 함께 하시는지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그분의 현존은 바로 협력자인 여러분들을 통해서도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는 여러분들과 함께 한국에서의 이 아름다운 선교사업의 페이지들을 계속해서 써 내려 가고 싶습니다.(편집자)

새로운 위로의 샘터

그동안 한국에서 쌓인 경험이 있었기에 우리는 새로운 지역에 우리의 바람과 더욱 잘 맞는 센터를 설계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대전 공동체인데 이곳은 우리 수도회에 대해서 더욱 잘 알리고 선교사업도 더욱 활성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곳입니다. 유흥식 라자로 주교님은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우리를 환영해주셨습니다. “여기 우리 대전 역시 위로가 필요합니다. 본부를 위한 땅은 걱정하지 마세요.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적합한 장소를 이미 선택해놓으셨습니다. 그것이 어디인지 찾아내기만 하면 됩니다.” 사실이었습니다! 포도밭의 주인께서 이미 좋은 땅을 이미 마련하시고 우리에게 여느 때처럼 천사를 보내주셨으니 그분은 아들 마태오와 함께 찾아온 김요셉이었습니다. 마침내 지난 2012년 10월 29일 우리는 새로운 위로의 샘터를 열게 되었고, 종교간 대화의 모험은 새로운 도약을 시작하였습니다.

벼랑과 산등성이 사이에서

“Hola Martín, como estás?”(안녕, 마르틴, 잘 지내요?) “No has encontrado trabajo aún?”(아직 아무 일도 못 찾았어요?)” “Hi, Mary, How are you today? Shall I go to the hospital with you?”(안녕, 메리, 오늘은 좀 어때요? 병원에 같이 갈까요?)” ……
웬 외국어 수업이냐고요? 아닙니다. 의정부 교구의 동두천에 있는 꼰솔라따 선교수도회 본원의 모습입니다. 이곳은 이 지역에 사는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안전한 만남의 장소가 된 지 오래입니다. 이 건물 위층에서 며칠을 머무른 사람도 있고, 제대로 된 숙소를 찾을 때까지 아니면 상처나 병이 나을 때까지 몇 주간을 이곳에서 보낸 사람도 있습니다. 이 모두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우리의 노력이 발전하여 낳은 오늘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동인천의 만석동에서 여러 해를 살았는데 이 지역에서는 도시 재개발사업이 점점 더 구체화되어 갔습니다. 그곳에서의 우리 존재 의미와 방식, 구체적인 방법들을 돌이켜보고 평가하면서 우리 공동체는 이제 변화해야할 때가 왔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서울의 달동네인 구룡 마을로 옮기에 되었습니다. 2001년 세 분의 선교사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시작되었는데 우선 그곳에 허락된 좁은 공간을 잘 활용하기 위해 온갖 지혜를 짜내야 했습니다. 바로 옆에 다른 작은 집도 있었는데 이곳은 그 동네의 아이들을 위한 방과 후 활동에 이용되었습니다. 이 활동에도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도와주었으며 특히 대학생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그 무렵 우리 공동체에는 많은 선교사들이 도착하고 떠나기도 했는데 1998년 1999년 사이에만 벤자민과 라파엘 신부님 그리고 제가 한국을 떠났고, 대신 2000년에 노베드로와 에우제니오 신부님이 도착했습니다. 2001년에는 최초로 아프리카 출신의 피터 신부님, 타므랏 신부님, 조셉 신부님이 도착했습니다.
이중 조셉 오체노 신부님은 한국어를 배운 다음 이 곳 구룡 마을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신부님은 그분 자신의 말처럼 이곳에서“몇 가지 해야 할 작은 일”들을 하면서 기쁘게 생활했습니다. 마을 할머니들을 위해 집을 수리해주는 일이나 시장을 봐주는 일, 그 밖의 다른 작은 심부름 그리고 마을 아이들을 위한 방과 후 영어 공부를 도와주는 일 등이었습니다. 신부님은 진정한 의미의 스포츠맨이었는데,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스포츠클럽에 가입하기도 했습니다. 2005년 12월 18일 신부님은 자신이 속한 스포츠클럽의 친구들과 함께, 심장병 어린이를 돕기 위한 하프 코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 킬로미터 달리지도 않아 심장마비로 쓰러져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신부님의 나이 겨우 31세밖에 되지 않았기에 그 소식은 우리에게 충격과 함께 큰 고통을 주었고, 우리를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같은 해 2005년 1월 6일, 신학생을 하늘나라로 보내는 비슷한 충격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당시 영성지도신부님이던 박호 신부님이 우리 선교회의 가족인 한 학생의 집에 초대를 받았는데 그날 운전을 신부님과 함께 갔던 다윗 신학생에게 맡겼습니다. 그런데 교통사고가 났고, 박호 신부님은 기적적으로 거의 아무 상처도 입지 않았으나 다윗은 생명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사고가 난 광주로 급히 달려가 겨우 29세의 젊은 다윗의 친지와 부모님 그리고 박호 신부님과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2005년은 정말 우리에게는 끔찍한 한 해였습니다. 우리는 씨앗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시켜주는 하느님의 말씀과 믿음에 온 힘을 다해 매달려야 했습니다.
이런 사건이 있은 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구룡 마을이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한국으로 들어와 소외되고, 때로는 불법적으로 체류하면서 자신들의 가정을 위해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도 초기에는 외국 이민자들의 현상을 인식하고, 이런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데에 힘겨워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국민들은 조직력과 확고한 너그러움을 가지고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는데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돕고 끌어안는 이러한 일을 하기 위해 한국 교회와 협력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동두천에 집을 찾기로 결정했고, 2007년 10월 동두천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이후로 우리 선교사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일을 시작했으며 특히 필리핀, 나이지리아, 페루의 노동자들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이 무렵 한국 공동체에는 여러 명의 선교사들이 오고갔는데 저는 2002년 로마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이곳으로 돌아왔습니다. 2004년에는 시릴 신부님이 왔고 그전까지는 루이스 신부님이 차례에 따라 그곳에서 봉사했습니다. 그 후 2005년에는 제어 신부님이 한국을 떠났고, 같은 해에 총참사위원에 임명된 박호 신부님도 한국을 떠났습니다. 2008년에는 선교사 체험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마르쿠스 신부님이 왔으며, 신부님은 2011년 사제서품을 받은 후 이곳에 남았습니다. 2009년에는 로렌소 신부님이 한국에 왔으며 시릴 신부님과 요한 바블로 신부님이 한국을 떠났습니다. 현재까지 마지막으로 온 신부님들은 2011년에 케냐에서 온 요한 신부님과 클레멘트 신부님이며, 피터 신부님은 한국을 떠났습니다.
그 동안 우리의 여정을 보호하고 이 여정에 함께 하도록 주님께서 보내주시는 천사들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선교 사업을 위해 협조하고 또 직접 선교사업에 함께 하시는 독지가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산’ 꼰솔라따 선교수도회

2009년 10월 8일, 베드로와 마르띠노 신부님의 사제 서품식에서 인천 교구 최기산 보니파시오 주교님은 “한국인 꼰솔라따 선교사들 중 처음으로 사제 서품을 받는 두 분이 모두 다 한경호라는 같은 이름을 가졌다는 것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라고 신자들을 향해 열변을 토하셨습니다. 신자들은 “와!” 하는 환성과 놀라움으로 주교님께 응답하면서, 두 분의 새로운 사제를 특별한 사랑으로 맞아주었습니다. 주교님은 “브라질과 스페인으로 가게 되는 이 두 분은 선교활동을 위한 선교사로서 꼰솔라따 수도회만이 아니라 한국 교회로부터도 파견되는 것입니다.”라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포도원의 주인께서 ‘벼랑’의 고통을 경험하게 하시는 것을 넘어 마침내 ‘산등성이’의 산들바람을 경험하는 기쁨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쁨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되풀이되었습니다. 2011년 1월에는 지금 콜롬비아에 있는 김문정 요셉, 2012년 1월에는 현재 케냐에 있는 이동욱 베니뇨 그리고 마지막으로 꼰솔라따 수도회의 한국 진출 25주년을 기념하는 2013년 1월에는 김명호 요세피노를 사제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현재 아르젠티나에서 양성을 받고 있는 마르코 수사와 대전 공동체에는 베르나르도 수사가 있습니다. 포도밭의 주인께서 이 분들을 개인적으로 돌보아주심을 믿습니다. 또 이들의 모범에 따라 많은 다른 젊은이들이 교회의 선교활동을 위해 너그러운 마음으로 자신들의 인생을 바치도록 보내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지니고 기쁜 마음으로 이들 모두를 그분께 맡겨드립니다.

결론

한국에서의 우리의 역사는 길고도 매혹적입니다. 무엇보다 크고 작은 모든 일들 뒤에 선교활동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의 손길이 있음을 발견하는 일은 너무나 매혹적입니다. 역사를 이끌고, 사건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때로는 분명한 방법으로, 때로는 보일 듯 말듯 모든 것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기시는 바로 그분이십니다.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선교활동은 동시에 개인적인 복음의 경험이 되며, 더욱 심화되고 생명의 수액이 되어 매일매일 주님 안에서 맛보는 진정한 정화와 믿음의 경험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 일은 참으로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사도 바오로가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로 한국에서 지난 25년간 걸어온 꼰솔라따 선교수도회의 매혹적인 발자취에 관한 이야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우리를 구름처럼 에워싸고 있으니, 우리도 온갖 짐과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그러면서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히브리서 12,1-2)
50주년 기념행사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25주년 앨범 (3)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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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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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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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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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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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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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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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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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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