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적인 발자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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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적인 발자취... 2

강 디에고 신부 I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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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당시 남 요한 바오로 신부님과 안토니오 신부님 등 두 번째 그룹이 1992년에 한국에 도착해 있었고, 라파엘 신부님과 벤자민 신부님은 1994년 가을에 도착했습니다. 그 다음 분들인 최알바로 신부님과 요한 바오로 신부님은 1996년에 도착하도록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수도회 식구들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일을 할 수 있는 능력도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다음 순서의 천사는 최 마리노라고 하는 분이었습니다. 기자였던 그분은 당시 이미 위중한 병을 앓고 있었지만 그분의 도움은 결정적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2000년 1월에 선종한 마리노 형제의 경험은 번역과 잡지 편집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여러 가지 일에 관한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의 전형적인 방식인, 임원 체제로 이루어진 후원회를 정립하는 데에 있어서 매우 유익했습니다. 또한 잡지와 더불어, 찬란한 영광의 순간들을 갖게 해준, 다양한 선교 관련 보조자료 시리즈들을 출간하도록 우리를 이끌어 준  분도 그분이었습니다. 개신교 신자이지만 늘 정성을 지금껏 다하고 있는 신기진 씨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거의 20년 동안 변함없는 우리의 고정 출판사 사장님이십니다!

이어서 이탈리아에 있는 우리 수도회의 뿌리를 알기 위한 여행(2000년)과 케냐(2004년), 스페인 포르투갈(2007년) 그리고 최근 몽골(2010년)까지 넓혀진, ‘선교 경험 순례’ 시기가 오게 됩니다. 이 번 2013년 하게 될 순례 여행의 목적지는 폴란드와 이탈리아가 될 것입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모든 문제들 중에서 몇 가지만 열거한다면, 진정한 선교 정신, ‘ad gentes (백성들에게)’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데에 따르는 어려움, 독지가들의 수를 지속적으로 늘려야 하는 데에 따르는 필요성, 잡지 보급 등이었습니다. 사실 최근 몇 해 동안 선교 활성화 그룹이 엄청난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단 하나의 고정적인 청년 선교 그룹을 만들지 못 했고, 수도 생활과 선교 사업과 관련한 성소가 한국에서도 현격하게 감소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포도밭의 주인께서 아직 우리를 위해 일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마침내 ‘다른 이’들을 향해: 종교간 대화

“성스러운 부처님께 귀의하나이다! 성스러운 불법에 귀의하나이다! 성스러운 승가(공동체)에 귀의하나이다!” 이 전통적인 불교의 ‘신앙 고백’은, 목탁 소리에 맞춰 한 구절의 기도가 울릴 때마다 경건하게 깊은 절을 올리는 대중들과 함께, 성스러운 의식을 이끄는 비구니 스님이 읊는 소리였습니다. 지난 2012년 5월 부처님 탄생일에 있었던 이 의식을 저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석가 탄신일에 가톨릭교회의 축하를 불교 공동체에 전하기 위해 참가하신 대전 교구 유흥식 라자로 주교님의 개인적인 초대를 받고 이 의식에 참석했었습니다. 여러 종파의 수많은 스님들과 신도들이 종교간 대화를 위한 교황청 평의회가 해 마다 이 날을 맞아 공표하는 공식 메시지를 읽는 주교님을 경청했습니다.

저는 이미 전에 만석동에 있을 때, 몇몇 무당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의 요란한 의식에 참가한 적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한국에 도착했을 때부터 많은 불교 사원을 방문하여 수백만의 사람들을 인도하는 ‘살아있는’ 그 종교를 보면서 놀라움을 경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국에 도착한 첫 순간부터 이 나라에 있는 비 그리스도교 종교와 만나고자 했던 우리의 커다란 꿈은, 결코 잊혀지지 않고 늘 생생하게 살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한 우리 선교 사업의 다른 시급한 것들에 밀려 늘 ‘뒷자리’에 오곤 했습니다.

이런 차원의 선교의 시작을 알리는 종은, 이에 대해 특별한 감수성을 지녔던, 두 번째로 한국으로 도착한 그룹의 안토니오 신부님이 울렸습니다. 다른 종교의 신자들과 첫 관계를 맺은 사람이 바로 안토니오 신부님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통해서 포도밭의 주인이신 주님께서는 다시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다시 한 번 이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대화에 관한 경험이 어느 정도 견고해지기 시작했는데 장상 방문으로 한국에 오셨던 당시 우리 수도회의 부총장 안토니오 트레바시올 신부님이 새로운 식별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결론을 내려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비 그리스도 교인을 위한’ 존재인 우리가, 종교간 대화를 한국에서의 우리 선교 활동의 본질적인 차원으로 받아들이도록 선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1995년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공식적인 이 결정이 ‘실질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긴 준비 기간을 필요로 했습니다. 서강대학교에서 비교 종교학을 공부하던 안토니오 신부님과 동행하면서 저 역시 ‘다른 이들’의 삶과 신앙을 더욱 잘 알기 위해 그들을 만나러 다니기 시작했고, 몇몇 종교를 소개하는 세미나에 참가했으며, 다른 종교의 성지를 방문하거나, 이웃 종교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 마련된 ‘종교간 순례’에도 참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무렵 김 요셉 씨의 크나큰 도움으로, 역곡 본원에서 멀지 않은 부천시 소사구 옥길동에 작은 종교간 대화본부 건축이 마침내 끝났습니다. 그리고 1999년 4월 갑자기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교황 대사 모란디니 주교님과 여러 종교의 많은 친구분들 그리고 적지 않은 수의 꼰솔라따 회원들이 함께한 가운데 인천교구의 나길모 주교님에 의해 성대하게 본부 준공식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한국 지부의 세 번째 공동체가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평화의 거리’에 힘입어 각 종교의 지도자 후보들로 이루어진 대화 그룹이 우리 본부를 통상적인 활동 본부로 삼았기 때문에) 모임과 활동들이 풍성했던 기쁨에 찬 첫 시기가 지난 뒤, 실망스런 시기가 뒤를 이었습니다. 결국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위기와 고생과 어려움 때문에 ‘평화의 거리’조차 해제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에도 우리는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2002년까지 우리는 한국 주교회의의 교회 일치와 종교간 대화 위원회에 참여하도록 초대되었고, 그 뒤 ‘한국 종교인 평화회의 (KCRP)’에 들어갔는데 한국 종교인 평화회의에 참여한 일은 종교간 대화 분야에서 우리의 존재가 드러나도록 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제가 그곳에 참여하는 유일한 외국인이라는 사실 또한 이를 더욱 쉽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루하루가 지나는 동안 종교간 대화 활동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종교간 대화 활동과 관련하여 우리를 도와주도록 오랫동안 가톨릭 신자들로 이루어진 그룹을 양성하는 노력을 해왔고 이 그룹과 함께 이웃 종교의 사람들이나 본부를 여러 번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그 황금기는 2005-2006년 성원스님의 관심과 환대로 역곡 가까이 있던 한 사찰의 신도들과 고정적인 관계를 맺었던 때입니다. 그러나 성원 스님이 산 중 암자로 옮겨가게 되자 갑자기 모든 것이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우리는 조금씩 어떤 형태의 대화를 해야 하는지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신도들 사이의 대화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 길게 이어지는 관계여야 하며 산발적인 것으로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종교적인 경험을 교환하는 것을 통해 서로를 살찌우는 대화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는 포도원의 주인께서 한국 정부라는 예상치 못한, 직접적인 손길을 통해 우리의 거처에 강력하면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변화를 주셨습니다. 정부가 주택 단지를 건설하기 위해 우리가 포함되었던 옥길동 지역을 재개발하기로 한 것입니다. 새로운 위기가 온 것이었고, 새로운 분별이 요구되는 상황이 온 것입니다!


25주년 앨범 (2)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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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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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p. 22 A.jpg p. 22 B.jpg p. 22 C 남요한 바오로 신부님과 우리 신학생들.jpg


2000년

남양 성지순례.jpg 성서 공부 졸업식.jpg 오유진 신부님과 노 베드로 신부님의 한국 도착과 요한 바오로 신부님의 어머니 한국 반문.jpg


2001년

p. 23 A 우리 수도회의 창립 100주년 겨념미사.jpg p. 23 B 우리 수도회의 창립 100주년 기념 이탈리아에 성지순례.jpg p. 23 C 꼰솔라따 대축일.jpg p. 23 D 구룡마을 공동체 시작.jpg


2002년

p. 23 E 요셉 탐으랏 또 피터 신부님들의 한국 도착.jpg p. 23 F 아린즈 추기경님의 방문.jpg p. 24 A 아린즈 추기경님의 방문 2.jpg p. 24 B 성탐 부뉘기.jpg

 

2003년

p. 25 A 총장 신부님의 방문.jpg p. 25 B 몽골에 처음으로 가시는 우리 선교사들의 방문.jpg p. 25 C 꼰솔라따 대축일.jpg


2004년

p. 26 A 케냐 선교지 순례.jpg p. 26 B 시릴 신부님의 한국 도착.jpg p. 26 C 디에고 신부님의 사제서품 25주년.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