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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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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선교사로서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하고 있는 활동들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수도회가 여러 번의 선교 순례를 계획하는 이유 중 하나인 것입니다. 선교 순례의 목적은 여러분 중 일부가 우리 선교사들을 비롯해 그들과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지난 6월과 7월, 몇몇 회원들이 몽골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 선교사들을 방문했습니다. 우리는 박덕임 비비안나 자매님께 자신의 경험을 우리에게 들려주십사 부탁했습니다. (편집자)
벌써 그곳이 그립다
박덕임 비비안나
 

‘센베노(안녕하세요)?’ 12박 13일의 여정이 아쉽게 끝났다. 그곳의 청량한 하늘이 생각나고, 그곳에 남아 있는 모든 이들이 보고 싶다. 특히 아르베헤르 첫 세례자들: 막달레나와 카타리나오 외의 네 분…. 그리고 막달레나의 순진하기 이를 데 없는 남편도…. 우르항가이 아르베헤르 아이들도.

몽골…. 가까운 나라라고는 하지만 (한국에서비행기로 3시간 남짓 거리에 있다. 시차 1시간), 전혀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던, 가끔 방송에서 봤던 칭기즈칸과 바람과 모래…. 3년마다 선교지 순례를 계획하는 수도원이 아니었다면 내가 몽골을 만날 수 있었을까? 칭기즈칸 공항을 나서니 오싹 한기가 느껴진다. 섭씨 18도. 늦가을 날씨 같다. 숙소는 소박했다.

6월 16일 아르베헤르로 출발 전 아침 미사 시간에 알바로 신부님이 우리 모두에게 첫 강론을 해주셨다. “내 마음에 평화가 있어야 상대를 용서할 수 있고 용서와 자비는 하느님뿐만 아니라 내 자신도 내가 용서해야 한다. 겸손한 마음으로 자연과 가족들, 여기 있는 모든 이를 용서해야 한다. 용서의 은총을 구하며 하느님께서 여기까지 불러주신 것에 감사하고, 서로에게 감사하자.”이제부터는 우리의 선교지 순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나 보다. 가면서 보는 풍경이 한국과 사뭇 다르다. 끝없이 펼쳐지는 대초원.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양떼들…. 평화, 여유로움, 한가함. 가는 길에 하르호린(몽골의 옛 수도) ‘에르덴주’에 들렀다. 울란바토르에서 서쪽으로 약 400㎞ 떨어진 곳.

청나라의 침공 탓에 파괴되어 1586년 티베트의 건축 양식을 본뜬 라마 사원으로 다시 지어졌다고 한다. 탑이 108개 있다. 2050년에는 이곳으로 다시 수도를 옮길 예정이란다. 넓은 초원. 시리도록 파란 하늘에 솜털처럼 부드러운 구름, 그곳에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들…. 물 먹는 말과 긴 털을 자랑하는 야크, 그 것만 본다면 몽골은 천혜의 자연을 가득 받은 행복한 나라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추위, 6월에도 눈을 볼 수 있는 나라. 한 낮에는 더위에 시달리는 나라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그들이 새삼 위대해 보인다. 멀리 그림으로만 보았던 ‘기르 촌’이 보인다. 우리가 하룻밤 묵을 숙소란다. 기르(천막)가 여러 채 지어진 리조트 단지에 짐을 풀었다. 기르에는 남쪽으로 문이 있고 정중앙에 침대 1대가 왼쪽과 오른쪽에 1대씩 배치되어 있고 문을 들어가자마자 중앙에는 난로가 놓여 있다. 난로를 신성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죄이며, 집 주인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방문해서는 그 집 문턱을 발로 밟지 않아야 하고, 들어가서는 왼쪽으로 돌면서 그 집에 복을 빌어 주어야 한다.

드넓은 초원을 지나다 보면 조금 높은 언덕 같은 곳에는 어김없이 지저분한 쓰레기 장 같은 곳이 있는데‘오보’다. 돌무덤 같은 곳에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 천이 널려 있고 그 앞으로는 말 머리뼈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간간이 술병 같은 것도 보이는데, 잘 모르는 우리 눈에는 영락없는 쓰레기장이다. ‘오보’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가족의 안녕을 비는 것과, 죽은 말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지나가다가 차를 세우고 가족끼리, 친구끼리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복을 비는 모습이 이채롭다. 처음으로 키 큰 나무들로 울창한 숲을 보게 되었다.

두 번째 게르 캠프와 먼젓번 ‘기르’에서와 달리 이곳은 한 채의 기르마다 바퀴와 나무로 만든 테라스가 있었다. 한층 운치가 있다. 기르는, 몽골의 척박한 대륙 기후와 유목 생활에 적합한 주거 형태인 것 같다. 쉽게 분해할 수 있어 이동이 용이하고 원형대로 복원하기 어렵지 않다. 나무 골조와 펠트 덮개. 나무 골조는 벽(한이라고 함), 관, 신, 기둥(우니), 연기 배출구와 지지대(바간)로 되어 있다. 벽의 수와 나무 막대기는 게르의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 대개 유목민의 게르는 5~9개의 벽으로, 내부 크기는 6~18㎡이다.

이젠 몽골의 전통 음식을 엿보기로 하자. 우유통 같은 곳에 잡은 양과 감자, 양파, 피망, 당근과 함께 물을 넣고, 돌을 뜨겁게 구워 푹 삶아내는 ‘호르혹(Horhog). ‘수태보타슐’ 수태(차) + 보타(밥) + 슐(스프) 같은 음식도 있고, ‘쓰이반’이라고 해서 각종 야채와 양고기, 스파게티 같은 국수, 혹은 밥 등을 볶아 먹기도 한다. 그 외에 고기만두(Buuz)도 있다. 만두 속이 ‘양고기’일 뿐이다.

‘하르바히르’에 도착

마침내 우리 수도원이 있는 ‘우르항가이의 하르바히르(인구 26,000명)’에 도착. 조그마한 고장이다. 먼저 시장을 둘러보았다. 우리의 작은 시골 장터 같은 곳. 시장 초입부터 노점상들이 펼쳐 놓은 물건은 정말 소박했다.

옷가지 몇 줄, 수북이 쌓아 놓은 신발은 중고 품인지, 상인이 걸레로 열심히 닦고 있고, 담배 가게와 골목을 돌아 슈퍼마켓이라는 곳을 갔는데, 제법 여러 가지 물건들이 있지만 그 물건들의 질을 따질 수는 없고, 눈에 띄는 것들, 오리온 초코파이, 라면, 간장, 비누, 커피가 한국 것이다. 반갑기도 했지만 그들의 경제 사정을 엿볼 수 있었다.

여기에서 차로 약 5~7분 거리에 우리의 목적지 ‘꼰솔라따 수도원’이 있었다.

널찍한 마당 한 켠에 ‘기르’ 몇 채가 엎디어 있고, 현대식 건물과 마당 중앙 쯤엔 우리의 원두막 비슷한 구조물이 있다.

‘조르지오(이탈리아 토리노), 다니엘(이탈리아)’ 신부님, 산드라(아르헨티나), 젤투르다(모잠비크)’ 수녀님이 반가이 맞아 주신다.

2003년 선교를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다. 간단히 이곳의 실정과 신자들의 현황에 관한 나눔이 있었고, 바로‘아이들’의 환영식’에 참석했다. 몇 분의 어른과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매일 입는 옷은 아닌 듯, 모두들 폼 나는 옷으로 갈아입고 온 것 같았다. 우리와 비슷한 외모라 낯설지는 않았지만 어른들의 옷차림에서 이국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 처음엔 조금 머뭇거리다가 일제히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껴안고 악수하고, 다시 껴안고 악수하고, 같은 아이와 여러 번. 어른들은 뒤에 조용히 기다렸다가 아이들의 환영 인사가 끝나자 우리에게 다가왔다.

가슴 한 쪽에 잔잔한 감동이 스며들었다.

비슷한 외모라 친근감이 들어서일까? 우리가 물어보면 한국말로 대답할 것 같다. 혈연 같은 유대감이 생긴다. 우리의 시골 마을 친척 집에서 오랜만에 삼촌, 고모, 이모, 조카들을 만난 것 같다. 추위에 얼었다 녹아서인가? 아이들 얼굴이 발갛다.   ...->

 

자연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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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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둡훈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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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로린에 위치한 에르덴죠 사원의
108개 불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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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회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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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양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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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담 축제 중 몽골 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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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레나와 그녀의 남편과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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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천막) 조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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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공동체인 꼰솔라따 수도회에서 세계 각 나라에 선교사들을 파견해 그 나라에 맞게 사람들과 문화와 종교와 신앙에 관한 것을 나누며,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뜻을 실천하려는 강한 의지 때문에 2003년 몽골에서의 모험을 시작했다. 우리는 그동안 이 몽골 땅에서 신앙의 결실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실천되고 있는지, 또한 우리가 무엇을 도와줘야 되는지, 이 도움의 손길은 몽골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굳이 이름을 붙이면, ‘선교지 순례‘다.

처음 이곳 선교사들과 맞닥뜨렸을 때 그들의 열정적인 삶의 모습 속에서 그리스도를 보았다면 너무 비약적인 생각일까? 그리스도의 삶을 그들에게 말없이 보여주고 있는 작은 그리스도가 거기 있었다. 2007년에 이곳 ‘하르바히르’에여정을 시작하고 어렵게 땅을 마련하고, 건물을 짓고 사람들을 모으고, 하느님의 사랑을 심기까지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렸을까?

드디어 올해 6명의 정식 몽골 ‘하느님의 자녀’가 태어났다. ~ 얼마나 위대한 사랑인가?

막달레나의 집을 방문과 꼰솔라따 성모님의 대축일

가난한 산동네. 가는 길에 여기저기 널려 있는 쓰레기 더미들. 호기심어린 아이들. 아이들 손에 과자와 사탕을 주면 아주 좋아했다. 막달레나 집은 수도원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작은 땅에 게르가 석채. 한 채에서는 언니, 다른 곳은 동생, 또 다른 친척.

먼저 기르 안으로 들어가서 왼쪽으로 돌며 그들 가족의 안녕과 건강을 빌어 주었다. 곧바로 주인인 막달레나가 따뜻한 차와 과자를 주었고, 색색의 예쁜 사탕을 내왔다. 우리는 각각 서로를 소개했고, 막달레나도 식구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쪽 벽에는 신자답게 불단을 모셔놓았던 자리에 성모님을 모셔 놓아 우리를 기쁘게 했다. 가족사진도 있고 아기자기 하게 장식품도 진열해 놓은 것을 보니 막달레나의 예쁜 성품이 엿보이는 것 같았다. 그곳 신자 가정 방문을 마치고 오는 길은 여기에 온 보람과 함께 같은 주님을 모신 형제 자매로서의 따뜻함으로 행복했다.

꼰솔라따 성모님의 대축일이 기다려진다. 많은 몽골의 어른과 아이들을 만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대축일 미사를 ‘하르바히르’에서 드리게 된 것에 다시 한번 하느님께 감사 드리고 싶다.

울란바토르 공동체로 다시 돌아가는 길

되돌아가는 길의 초원은 올 때와 또 다른 느낌이다. 보이지 않던 아름다움이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각인되고 있기 때문일까? 가는 길에 잠시 ‘사막’에 들렀다. 몽골에 와서 ‘고비사막’을 가볼 수 없다는 말에 얼마나 서운하던지. 그러나 사전 지식이 없어서였지만, 엉뚱한 곳에서 ‘고비사막’을 찾으면 어쩌겠다는 말인가? 결국 ‘고비사막’은 저~~~ 언덕 너머에두고 ‘힘든 고비’라도 넘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막 비스므레한 곳…. 사실 사막체험은 제대로 했다.

결국 울란바토르로 다시 돌아왔다. 여행을 하다 보면 다‘애국자’가 되나 보다. 먼 이국에서 우리 나라 기업들의 활발한 활동을 보게 되면 반갑기 그지없다. 울란바토르 시내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버스들. 초록은‘현대’차고 노랑은‘대우’차다. 뿌듯하다. 몽골인들 중 많은 사람은 우리나라에 와서 돈 버는 것을 꿈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이제는 이곳 공동체 방문이 이어진다. 주교님과 수녀님들을 만나기로 되어 있다. 숙소 바로 건너편에 있는‘성모승천 항올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대전교구 김승현 스테파노 신부님이 2000년에 선교를 위해 오셨다는데 뜻밖에도 얼마 전에 순례했던‘공세리 성당’이 고향이시다. 강론 중에, 어릴 적에 성당 한켠에 있는 공덕비(초대 드비즈 신부)를 보며 신부의 꿈을 키우셨다고 한다. “저분은 어떤 분인데 이 먼 나라에 와서 주님의 말씀을 전하셨을까? 나도 저 분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셨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몽골에 와서 10년이 넘었는데, 이곳에 살면서 몽골인들이 세워 준 ‘공덕비’ 하나 갖는 것이 꿈이라고. 그 뜻은 그 공덕비를 보며 또 다른 어떤 몽골 소년의 꿈을 키워 가는 사람으로 남고 싶으시단다.

부모님 보다 먼저 성당에 오는 아이들이 ‘신앙의 모델’이 되어 이땅 몽골에 주님의 말씀이 곳곳에 자리 잡게 되기를 마음으로 빌어 본다.

인자하게 맞아 주시는 주교님을 뵙고, 손수 음료수를 따라 주며 권하시는 모습에서 소탈하신 성품과 주교관의 검소함이 몽골인들의 삶과 잘 닮아 있는 것 같았다.

같은 뜻과 사명으로 ‘Mary Ward Center’에서 한국 수녀님들을 만나 보았다. 가난하고 소외받는 소년 소녀들의 쉼터이자 배움터이고, 꿈을 키우는 이곳, 수녀님들의 보살핌으로 먹고, 잘 수 있는 공간과 공부할 수 있는 방, 컴퓨터실 등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체험한 이 모든 것이 주님의 뜻을 통해 그대로 펼쳐지기를 바라며, 열셋째 날 전부를 주님께 봉헌했다. 그리고, 특히 이번 일을 계획하고, 같이 참여하고, 모든 일정에 차질 없도록 준비하신 알바로 신부님과 그곳에서 정말 헌신적으로 우리 일행과 함께 해주신 에르네스토 원장 신부님과 김요셉 수사님, 지오르지오, 다니엘레 신부님, 산드라, 게르트루드 수녀님께 감사드린다!

끝으로, 울란바토르에 몽골 인구의 절반이 모여 들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단다. 그 바람이 그들에게 물질의 풍요와 함께 정신적인 풍요도 함께 누리기를 바라며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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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 캠프에 있는 6월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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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딜라 주교님과 함께 한 7월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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