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조회 수 7500 추천 수 0 댓글 0
Extra Form
번호 07-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제이자 의사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선 교 체 험

      28.jpg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제이자 의사
파올라 바비크 (Paola Babich - Missioni Consolata)
아이티(Haiti)는 카리브해에서 쿠바와 도미니카 공화국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국가이며,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일하게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곳입니다. 유명한 관광지임에도 불구하고 아이티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개발이 되지 않은 곳 가운데 하나입니다. 인구의 약 66%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종교적으로는 인구의 약 80%가 가톨릭 신자이고, 약 16%가 개신교 신자입니다. 리처드 프레케트 신부님은 미국 출신으로, 사제이자 동시에 의사의 신분으로 이곳 사람들의 육체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허리케인과 가난

29.jpg
젊은 엄마들과 어린 아이들에게 의학적인
지원을 제공하는“작은 천사들의 집”

병실에서 리처드 신부님은 올리비어 베이시(Olivier Beish)와 루벤스 베토벤(Luvens Bethoven)의 작은 몸에 성유를 바릅니다. 그리고 하얀 수의로 그들을 쌉니다. 그런 다음 아이티인들은 감당할 수 없는 사치인, 올바른 매장 형식을 갖춘 장례식을 치러줄 것입니다. 두 구의 시체는 나무관이 너무 비싼 이유로, 재활용된 마분지로 만든 관에 안치될 것입니다. 병원의 버려진 시체에는 연고자가 아무도 나타나지 않으므로, 리처드 신부님은 그들을 도시 밖 언덕에 묻어주고 이름 없는 십자가를 세워줍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은 무연고 시신들이 모두 함께 묻히는 참호에 버려지게 될 것입니다. 아이티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살아서는 물론, 죽음에서도 모두 가난합니다. 아이들은 가난한 이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가난한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홉 명 중 한 명은 다섯 살까지 살지 못합니다. 많은 아이들이 부유한 국가에서라면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는 병 때문에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아이티인들은 가난으로 인해 고통을 겪을 뿐만 아니라, 거친 날씨 때문에도 고통을 겪습니다. 2008년말에는 세 개의 허리케인(태풍)이 섬을 강타해 수백 명의 사람들이 죽었으며, 이미 고통을 겪고 있는 이 나라에 더욱 심각한 절망을 안겨주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1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으며, 아이티 국민들의 평균수명은 53세입니다. 식량 부족, 계속되는 실업, 자연 재앙으로 인해 가난과 주변화(周邊化)가 계속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집이나 위생시설, 교육시설과 같은 기본적인 생활필수품조차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공식적인 통계에 따르면,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도, 하수도 시스템도 없는 인구가 40%에 이릅니다.

가난한 이들의 영웅

리처드 신부님은 이러한 상황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아이티에 거주하면서 일을 해 왔습니다. 그는 NPH(Nuestros Pequeno Hrmanos :작은 형제들)의 열성적인 회원입니다. NPH는 중앙아메리 카와 남아메리카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쳤던 미국인 사제 윌리엄 와선 신부님(1923-2006)이 1954년에 설립한 인권 단체입니다. 리처드 신부님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저는 1979년, 뉴욕에 있는 패시언스트 수도회의 수도원에서 서품을 받았습니다. 저는 윌리엄 와선 신부님을 보면서 이곳 아이티에서 주님께 봉사하는 일에 저 자신을 바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이곳 사람들, 특히 아이들의 가난을 통해서 예수님의 수난에 대해서 묵상합니다. 제가 아이티에 도착한 몇 년 뒤, 의학을 공부해 외과 의사가 되기 위해 뉴욕에 돌아가려고 결심했습니다. 1987년에 공부를 마치고 이곳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의사이자 또한 사제가 되면, 이곳 사람들에게 더욱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교사로서 아이티로 가기 전, 리처드 신부님은 볼티모어에서 본당 사제로 활동하다가, 뉴욕으로 가서 쿠바 난민들과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5년 동안 온두라스에서 일했습니다. 1987년 신부님과 NPH의 의료진들이 수도인 포르토프랭스(Port-a-Prince)에 첫 병원을 개설했습니다. 또한 고아원도 운영했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병원으로 올 때 이미 건강 상태가 무척 악화돼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리처드 신부님과 그의 동료들은 아이들이 인간답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그들은 아이들 대부분을 적절한 병원으로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서비스와 도움을 개선하기 위해, 그들은 이탈리아에서 온 기부금으로 성 다미안 소아과를 지어, 2006년 12월 4일 문을 열었습니다. 해마다 이 병원에서는 4만명의 아이들에 게 무료 진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6시 30분이면 수많은 엄마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병원 문 앞에서 떼지어 기다리고 있습니다. 병원에는 350개의 병상이 있으며, 영양실조와 빈혈, 수막염, 결핵, 심지어 에이즈에 걸린 아이들을 기꺼이 맞아 치료할 준비가 돼있습니다. 병원은 최근 수술실 두 개를 새로이 마련했습니다. 지난 2008년 12월 NPH는 신체 장애아와 정신 장애아를 위한“작은 천사들의 집”을 열었습니다. 리처드 신부님은 이단체를 위한 기금을 모금하고 홍보하는 데에도 관여하고 있으며, 특히 뉴욕 마라톤대회에 참가해서 단체를 홍보했습니다. 그의 큰 키와, 그가 취하는 포즈로 인해 만화책의 영웅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는 정말로 가난한 이들,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있어 영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티는 도로에서부터 사회복지 시설까지 새로운 기반에 투자를 해야만 한다고 신부님은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또한 만연한 부패에 맞서 싸우기 위해 정의에 기반을 둔 도덕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강조했습니다.

30.jpg

 

병원을 방문하는 리처드 신부님

커다란 희망과 존엄성을 지닌 민족

리처드 신부님은 또한 슬럼가에 있는 사람들은 방문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심지어 경찰들조차 무서워서 들어가지 못하는 가장 위험한 곳도 말입니다. 그는 7개의 길거리 학교를 시작했는데, 이로 인해 3천명도 넘는 아이들이 마약이나 매춘, 노예 노동 거래에 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작은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수단을 제공했으며, 동시에 80명의 교사들에게도 일자리를 제공해주었습니다. 이 교사들 중 상당수가 NPH의 고아원 출신입니다. 그는 또한 가난한 아이들과 그 가족들이 심각한 질병과 응급상황인 경우에만 병원에 가도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이동 클리닉도 시작했습니다. NPH에는 급수(給水) 트럭도 있어서 2천명의 사람들에게 마실 물을 제공합니다. 또 다른 특별한 프로젝트로는 워프 제레미(Warf Jeremy)의 빈민가에 임산부와 미혼모에게 도움을 제공할 센터를 설립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나라가 직면하고 있는 고난과 극심한 가난에도 불구하고, 아이티 국민들은 커다란 희망과 존엄성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리처드 신부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티 국민들에게는 고난을 견뎌내는 커다란 능력이 있습니다. 저는 참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위대한 창의성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놀라운 자질과 저력을 가지고 있는 민족입니다. 저는 또한 저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이러한 능력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정직하고 섬세하며, 충직하고 근면하며, 재미가 넘칩니다. 아마도 아이티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커다란 기적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너그럽고 사랑스러운 사람들과 창조적인 독창성을 통해서 일으키고 있는 작은 기적들이 다수의 삶을 지금도 변화시키고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