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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의 일기
우리 한국 선교사들의 첫 걸음
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몇 년 동안 우리 잡지에는 한국을 떠나 세계 방방곡곡으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는 한국인 선교사들의 선교 경험을 실어왔습니다. 이제 우리 수도회가 첫 한국인 선교사도 배출해냈으므로, 우리는 그들에게 2010년 한 해 동안 자신들의 선교 경험을 우리에게 나누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한경호 마르티노 신부님은 지금 스페인에 있고, 한경호 베드로 신부님은 브라질에 있습니다. 두 분 다 한글 이름은 꼭 같습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이“선교의 일기”코너에서 함께할 계획입니다. 그러나 아직 이들 신부님들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그들의 경험에 대한 도입부 격으로 스페인과 브라질에 있는 우리 수도회 공동체를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그래서 두 분 선교사들에게 부탁을 드렸습니다(편집자).

 

스페인에서, 베르나르도 발데온 신부

34.jpg 우리 수도회는 1955년, 아르헨티나에서 일하고 있던 이탈리아 선교사인 비르지니오 로시(Virginio Rossi) 신부님에게 스페인으로 갈 것을 요청하면서 그분이 스페인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수도 마드리드에 짐도 별로 없이, 혼자 도착한 그는 선교 수녀원에 손님으로 머물면서 처음 몇 달 동안은 전국에 있는 교구들, 특히 많은 신학교를 방문하며 이곳 현실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신부님은 우리의 첫 번째 집을 루고(Lugo)의북서쪽 지역인 리바데오(Ribadeo)에 마련했습니다. 1962년 우리 수도회는 마드리드에 첫 공동체를 열었고, 현재는 엘체, 사라고사, 말라가 교구에도 공동체가 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우리의 주요 활동은 여러 본당 공동체를 도와 선교 정체성과 열정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선교사가 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을 교육하기 시작했고, 우리 수도회가 활동하고 있는 다른 국가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선교사들의 규모는 항상 작은 편이었습니다. 현재는 25명의 스페인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 선교사들이 있습니다. 수세기 동안 유럽의 가톨릭교회는 세계 구석구석으로 선교사들을 파견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고, 유럽의 현실 또한 변화했습니다. 요즘에는 이곳에서 일하기 위해서 입국하는 선교사들이 있습니다. 이제 스페인은 여러 나라에서 온 다양한 민족 집단이 있는 좀 더 국제적인 나라가 됐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문화와 전통을 함께 가지고 왔기 때문에, 교회는 이러한 새로운 현실에도 적응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선교의 개념 또한 변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단순히 다른 나라로 파견되는 것만이 선교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나라에서 활동하는 것 또한 교회의 선교 활동 가운데 한 부분이 됐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너무나 급속하게 변했으므로 교회도 이에 뒤쳐져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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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영성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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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수도회 선교사들의 모임, 마드리드의 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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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선교사 부부

 

그래서 이곳 스페인에서 우리 수도회는 선교 활성화와 성소 개발 부분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최근에는 아시아에서 온 이주자들과 함께하는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들 모두가 가톨릭 신자들은 아닙니다. 따라서 종교간 대화에 참여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이 됐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여겨서 노력을 쏟고 있는 활동은 지역 교회가 문화적, 사회적, 종교적, 경제적 배경이 각기 다른 다양한 사람들과 성공적으로 교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스페인 사회는 인권 향상, 증가하는 실업률, 소수 민족의 사회적 통합과 같은 새로운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교회도 또한 종교에 대한, 특히 가톨릭교회에 대한 전반적인 불만 증대와 관심 부족이라는 고민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크리스천 공동체들이 교회의 선교 활동에 깊이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일환으로 평신도 선교사들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1985년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30명 이상의 꼰솔라따 평신도 선교사들을 에콰도르, 브라질, 베네수엘라, 탄자니아, 콩고민주공화국 등 여러 나라로 파견했습니다. 현재 우리 선교사들은 13명으로, 3개 대륙, 7개 나라(스페인, 포르투갈,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케냐) 출신입니다. 우리는 이제 또 다른 대륙의 또 다른 나라인 아시아 한국 출신의 선교사도 포함할 수 있게 돼 기쁩니다. 우리는 모두 한 마르티노 신부님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그의 선교 생활에 행운이 있기를 빕니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여러분들께도 여러분의 깊은 선교 열정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 선교라는 기치 아래, 한 마음으로 단결합시다. 우리의 어머니이신 꼰솔라따 성모님께서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과 부드러움으로 여러분을 축복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브라질에서, 하임 파티아스 신부

36.jpg 선교사를 브라질로 파견한다는 생각은 브라질의 상파울로 근처 보투카투(Botucatu) 교구의 카를로스 코스타(Carlos Costa) 주교님이 우리 수도회의 총장인 가우덴 시오 바를라시나(Gaudencio Barlassina) 신부님을 방문한 결과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 총 참사회는 긍정적인 결정을 내리고, 요한 바티스타 비시오 신부님을 보냈으며, 그는 1937년 2월 17일 브라질에 도착했습니다. 다른 일곱 명의 선교사들은 1937년에서 1939년 사이에 파견됐습니다. 첫 번째 공동체는 상 마누엘(Sao Manuel)시의 남쪽에 형성되었고, 우리 선교사들은 지역 본당을 돕는 것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남 브라질로 선교사들을 보낸 주된 이유는 이 지역에 이탈리아에서 온 이주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성소자들을 찾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아프리카에 보낼 기금을 모금하고자 했습니다. 1937년 9월 5일 비시오 신부님은 상 마누엘의 본당 주임사제가 됐습니다. 그리고 곧 우리 신부님들이 선교 활성화와 성소 개발을 위해 엄청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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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라 데 산타나 본당의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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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마누엘 본당의 종교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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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아노 신부님과 에이즈에 감염된 아이들

 

우리의 첫 번째 신학교는 1940년 2월 8일에 8명의 학생으로 출범했으며, 며칠 뒤인 2월 16일, 우리의 첫 번째 소신학교가 브라질 남부의 산타 카타리나(Snta Catarina) 지역에 위치한 리오 오에스테(Rio Oeste) 시에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으로 인해 선교사들은 브라질로 파견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비시오 신부님은 리오 오에스테에 모든 학생들을 모으기로 결심했습니다. 전쟁 도중 브라질은 이탈리아, 독일과 적대적인 관계였으므로, 이 신학교는 브라질 정부에 의해 폐쇄될 위험에 처했지만, 끝내 폐쇄돼지는 않았습니다. 이후 우리 수도회는 신학과 철학 공부를 위한 신학교도 열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어린 소녀 몇 명이 선교사로서의 삶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우리 꼰솔라따 수녀님들이 브라질에 도착한 1946년에는 이미 18명의 소녀들이 교육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우리 수도회는 1946년, 3명의 새로운 선교사를 브라질로 파견했고, 1947년에는 20명을 더 파견했습니다. 1948년, 우리 본원은 상마누엘에서부터, 브라질에서 가장 큰 교구인 상 파울루(Sao Paulo)로 이전했습니다. 우리 선교사들은 몇몇 본당을 넘겨받아 선교 센터와 두 개의 노인 요양소를 지었습니다. 1974년 우리 선교 잡지가 태어나 선교 메시지를 온 세계로 퍼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재 브라질의 우리 선교사들은 본당 활동에서부터 에이즈에 걸린 아이들과 빈민가를 돕는 일을 포함한 사회복지 활동까지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평신도 선교사들의 교육 촉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재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의 브라질인 선교사들은 73명이며, 그 중에는 주교님도 2명 포함 돼 있습니다. 이곳 브라질에서 일하고 있는 선교사들은 45명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 선교소명에 관심을 보이는 젊은이들의 숫자는 지난 20년 동안 계속 감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좀 더 많은 “일꾼들을 주님의 포도밭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합니다. 우리는 한 베드로 신부님을 우리 가운데 맞이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아시아 출신의 동료를 갖는다는 것은 축복이며, 우리 수도회가 점점 더 국제적이고 다문화적인 공동체가 되어간다는 신호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러분의 믿음과 사랑과 후원을 우리 수도회,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여러 민족과 국가들과 함께 나누어주시는 한국의 회원 여러분에게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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