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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교 간 의 대 화
종교간 대화를 위한 영성 4-1
강 디에고 신부 IMC

 

얼마 전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의 안토니오 로벨리 신부님이 쓰신 아름다운 묵상을 읽었는데 아주 특별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복음의 착한 사마리아 사람에 관한 비유(루카10, 25-37)에 대한 이 묵상은 두 가지 주제에 비추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수도 생활의 공동체적 삶이라는 측면과 ‘타인’ 곧 ‘이방인’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내용입니다. 그분이 쓰신묵상을 읽는 동안 이 묵상이 종교간 대화라는 우리의 관심분야에 아주 잘적용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특별히 나는 그분이 얘기하는 ‘시선’, 즉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길에 관한 이야기에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시선이 왜 중요한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루카10, 25-37)처럼 타인에 대해 탐구하고 발견해나가는 우리의 여정에 분명한 메시지를 주는 비유는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이 구절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위험이 있을 정도로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부분에 대해 자세하게 분석하기 보다는, 단순히 ‘타인’ 곧 ‘이방인’과 맺는관계는 무엇이며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는 지를 다시 읽어보려고 합니다.

실천을 촉구하는 부르심과 회개의 여정은 예수님이 이야기를 끝맺으면서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라고 한 명령을 통해 구체화됩니다. 그러나 이론적인 원칙으로부터 다른 사람과의 관계라는 실천으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타인 곧 문화나 종교적으로 나와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에 대해 숙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비유에 소개된 사람들의 다양한 시선들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유에 나오는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가는 길을 걸어가는 우리 자신을 상상해보는 것이 유용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시선은 왜 중요할까요?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우리가 지니는 시선은 마치 우리 자신의 명함처럼 우리의 모든 선입견을 응축해놓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선은 우리의 마음가짐과 자세를 드러낼 뿐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의 문을 열거나 닫아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시선은 타인이 나의 집 앞에 도착해 나를 기다리는 우리 집의 문간과 같은 것입니다. 상대방은 나의 시선으로부터 내가 그와 만나기를 원하는지 아닌지 나의 마음을 알아챕니다. 나의 시선에서 상대방은 내 마음의 상태를 읽고 그에 따라 자신의 마음의 상태를 드러냅니다.

비유에 나오는 사람들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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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에 등장 하는 첫 번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일반적인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평범한 어떤 사람’이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중요성은 그 사람이 어떤 자질을 가졌는지, 어떤 문화의 사람인지, 피부색이 무엇인지, 어떤 종교를 가졌는지에 달린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이웃은 그런 모든 것을 넘어서는 존재이고, 바로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사랑받아야합니다. 이 비유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은 예루살렘을 떠나 길을 가던 사람이었다는 사실 외에는 어떤 특별한 자격이나 특징을 갖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아무 특별할 것이 없이, 그저 평범한 ‘어떤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이 비유를 시작하는 방식을 통해 예수님은 ‘이웃’의 범위를 최대한 넓히고, 어떤 형태의 장벽도 허물어버립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이웃은 알지 못했지만 하느님께서 내 주위에 놓아주신 사람이며, 내가 형제로서 책임감을 느껴야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이웃은 함께 살기 위해 내가 선택한 사람도 아니고, 나와 어떤 관계도 없었지만 지금 나와‘관련이 생긴’사람입니다. 그리고 비유에 나오는 여러 사람들처럼, 내가 새로운 시선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며, 내가 그들의 반응에 따라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강도들의 시선

그런데 갑자기 강도들이 등장합니다. 아무 죄도 없는 불쌍한 나그네를 바라보는 ‘폭력’적인 시선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는 것 역시 중요하기 때문에 강도들이 어떤 시선을 가졌는지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강도들은 나그네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소모해 버릴 수 있는 단순한 먹잇감으로 바라봅니다. 그가 어떤 존재인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가 무엇을 소유했는지에 대한 기준으로 그를 바라봅니다. 오로지 이것만이 타인을 바라볼 때 그들이 고려하는 기준인데 이것은 우리들 사이의 관계나, 우리와 다른 종교나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우리 사이의 관계에서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때 우리의 시선은‘폭력적’이거나, 의혹에 차 있거나, 질투와 시기에 찬 시선이 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이 때 만남이 이루어지기보다는 타인의 시선을 지나쳐갈 수도 있습니다.

이름과 자신만의 역사를 가진 하나의 인간으로 타인을 바라보지 않고 그가 가진 소유물이나 그가 하는 일과 관련해서만 타인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면 나의 시선은 ‘폭력적’으로바뀝니다. 이런 눈으로 그를 바라볼 때, 나는‘그 사람은 흑인이야, 불교 신자야, 노동자야’하는 식으로 타인을 하나의 호칭으로 축소시켜 버립니다. 이처럼 폭력적인 시선을 지닐 때, 타인은 나의 요구와 나의 생각, 나의 관점에 자신을 맞추어야 하는 상대역이 될 뿐입니다. 그리하여 그 사람 앞에서는 나눔의 마음도, 나와 다른 차이점을 수용하는 공간도 닫혀버리고맙니다.

어쩌면 종교간 대화에서도 우리가 다른 사람을 ‘얼굴을 맞대고’ 바라보는 시간이 너무 적은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함께 둘러앉아 각자가 지나온 이야기를 나누고, 어려움을 나누며, 영혼의 상태를 나눌 수 있다면 매우 아름다운 경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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