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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교 간 의 대 화
종교간 대화를 위한 영성 4-2
강 디에고 신부 IMC

지난 호에서 우리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카 10, 25-37)에 대해 숙고하면서, 우선 우리의 시선이 타인에 대해 때때로 드러내는 일련의 ‘폭력적’ 태도들을 요약하는 ‘강도’들의 시선에 대해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대화가 없을 때 상대편은 단순히 무언가를 소유한 자로 전락하며, 이렇게‘앙상해진’그는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제와 레위인의 시선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 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루카 10,31-32). 이 사제와 이 레위인의 시선에는 무엇이 들어왔기에 그들은 강도에게 매를 맞아 초주검이 된 사람을 보고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게” 되었을까요? 그들의 눈은 십 중 팔구 율법이 정하는 정결에 대한 규정 때문에 두려움에 젖어 있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민수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구의 주검이든 그것에 몸이 닿는 이는 이레 동안 부정하다”(민수 19, 11-13). 따라서 이 사제와 레위인은 종교에 의해, 그리고 법이 요구하는 정결에 대한 강박관념에 의해, 냉정하고 무감각한 사람들로 변화되어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르다 보니, 그리고 바로 그들의 신앙을 실천하다 보니, 그들은‘격리된 사람들’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었고, 이것이 절대화됨에 따라 침투할 수 없는 화강암 덩어리처럼 다른 사람들을 짓누르게 된 것입니다. 죄인들, 이방인들, 그리고 이교도들을 ‘반대하는’ 정체성을 형성한 것입니다! 이 같은 일을 우리는 여기저기서, 모든 종교의 신자들 사이에서 발견합니다. 단순히 “…와 반대하는데서” 형성되는 정체성은 항상 상호작용에 따라오는 부담,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의 인간적 접촉에서 오는 부담을 피할 수 있게 하는 최상의 방어책입니다. 이 두 사람의 종교 신봉자들은 교만하고 타인을 무시하는 시선을 가진 채, 편견에 젖어 있었기 때문에 그냥 “지나갑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 대해, 특히 우리의 종교와 완전히 다른 종교를 믿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가질 수 있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흔히 그들은 비난의 대상이 되며, 더 심하면 외인들, 이단자들, 이교인들 혹은 이상한 사람들이라는‘공격’을 받기까지 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역시 일정한 계층, 문화 혹은 종교의 사람들에게 일반화된 기준을 자주 적용시키면서 그들을 판단하곤 합니다. 이렇게 되면 상대편을 있는 그대로, 그의 훌륭한 점을 인정하면서, 한 ‘인격체’로서 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희박해집니다. 이 같은‘시각’과 이 같은 편견들은 우리 생활 속에서 큰 물의를 일으킵니다. 이는 우리를 빗나가게 하고 혼란스럽게 하며 상대편을 수용하기 위해 진실로 그를 생각하고 알아보려는 노고를 피하게 합니다.

사제의 시선

17.jpg 이 비유의 중심인물인 ‘사마리아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유다인들에게는 분명 의외의 존재였고 불쾌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실 유다인들과 사마리아 사람들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증오심이 쌓여 있었습니다(요한 4,9참조). 그리고 ‘사마리아인’ 이란 용어 자체가 ‘마귀들린 자’라는용어(요한 8,48참조)와 함께 예수님을 공격하기 위해 사용된 단어였습니다. 강도에게 희생된 유다인이 사마리아인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신중하게, 그리고 의도적으로 사마리아인의 여러 특징 중 문화적, 종교적 요소를 결정적이고 특수한 요소로 부각시키셨습니다. 여기서 강조된 낯설다는 점은 우리가 문화 상호간, 종교 상호간의 시각에서 이 비유를 다시금 음미하는 데에 적합한 측면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물론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 큰 충격을 되살려야 할 것입니다. 이제 불행한 일을 당한 사람에 대한 사마리아인의 특징적 사항들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도록 합시다.

시간의 가치를 부여하는 시선

만남이 이루어지려면 무엇보다 먼저 서로를 알아야 하며, 서로를 알기 위해서는 상대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가 지닌 가장 값진 것을 공유하기 위해 그에게 ‘시간을 할애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우리 생활의 리듬을 생각할 때 우리는 곁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을 그만‘보지 못하는’때가 많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을 ‘관계의 사건’, ‘계약의 공간’, ‘상대편과의 만남의 장소’라는 근본적 차원에서 재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레비나스는 말했습니다.

“시간의 역동 (즉 시간을 작고 큰 사건들이 벌어진 역사의 전개로 보는 입장)은 타인들과의 관계의 역동입니다.” 만일 내가 ‘바라보는’ 사람, 즉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면, 나는 무엇보다 먼저 상대편의 시간을 떠맡고 존중하는 예술을 다시금-배우려 할 것이며, “상대편에게 시간을 할애하는”시선은 흔히 잊고 지내는 몇몇 덕목들의 재활을 도울 것입니다. 즉 인내를 들 수 있으니 그것은 상대편에게 내면적 공간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또한 충성을 들 수 있으니 이는 상대편의 시간을 기다리는 능력입니다. 희망이란 자신과 상대편의 미래를 책임지는 것입니다. 깨어 있음은 상대편을 보호하려는 구체적 노력입니다. 이 같은 것이 비유에 나오는 사마리아인의 시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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