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조회 수 7251 추천 수 0 댓글 0
Extra Form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우리 가족들의 소식

선교사 0 Km : 케냐 하늘 아래서 이동욱 베니뇨 수사

그리스도의 평화

39 copy.jpg 안녕하세요? 후원회 가족 여러분! 따뜻한 봄날이 찾아왔지요? 여기 케냐는 늘 늦봄이나 초가을 날씨라서 계절이 바뀌는지도 모르겠어요. 봄이면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개나리나 벚꽃이 무척 그립네요. 벚꽃이 만개하는 날 멋진 사진 한 장 보내주세요.

이태리에서 공부를 끝내고 마침내 선교지 케냐에 도착했습니다. 많은 기대와 걱정 속에서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4개월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태리가 저에게 꼰솔라따 수도회의 모원과 창립자 생가, 그리고 여러 역사적 장소를 통해서 수도회의 뿌리를 보여주었다면, 여기 케냐는 저에게 선교에 대한 초창기 선교사들의 열정과 사랑, 그리고 그들의 피땀 어린 열매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아직 언어를 배우고 있어서 선교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할 시간은 아니지만, 그 동안 새롭게 체험한 것들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케냐에 오면서 가장 많이 걱정했던 것들이 바로 말라리아와 음식 문제였어요. 그런데 여기 나이로비는 해발 고도가 높아서 아침, 저녁으로 선선하고 한낮에만 더워서 모기가 거의 없어요. 그리고 식사 때마다 자주 밥이 나와서 제 걱정들이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쉽게만 생각했던 선교지 생활이 생각보다 만만찮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도착한지 일주일 만에 겪은 크나큰 환대(영화에서만 보아왔던 총기강도, 이곳 신부님들은 제가 ‘불의 세례’를 받았다고 하더군요)를 통해 뼈저리게 느꼈어요. 그 사건을 통해 느낀 것을 잠시 나누고자 합니다. 무엇보다도 멀게만 느껴졌던 죽음이란 것이 결코 멀지 않다는 것, 즉 삶과 죽음이란 것이 종이 한 장만큼이나 가깝고 순간적이란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제게 원하시는 것(지금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이 따로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울러 청빈, 즉 수도자가 살아야 할 가난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불의의 사고나 아니면 자연적인 죽음을 통해 제 뒤에 남게 되는 것들에 대해 결코 부끄럽지 않도록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케냐가 제에게 나쁜 경험만을 준 것은 아닙니다. 피터 신부님 가족을 통해서 케냐의 따뜻한 정(情)을 느꼈습니다. 신부님 가족과 새해를 함께 보낼 기회를 가졌는데, 마치도 어릴 때 할머니 집에 간 느낌이었어요. 화장실이 멀찍이 떨어져 있고, 비포장도로에 비가 조금 내리면 신발이 온통 진흙투성이가 되는 정감 어린 풍경이었어요. 그리고 TV는 없지만 가족끼리 모여서 이런 저런 이야기와 음식을 나누고 빛바랜 사진첩으로 옛 추억을 이야기하며, 가까이 사는 친척에게 새해 인사를 가고… 무엇보다도 저녁기도를 가족이 다 함께 바치고, 집을 떠나기 전 어머니에게 축복의 기도를 청하는 모습에서 신앙심 깊은 가족을 보게 됐습니다. 낯선 곳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저에게 피터 신부님의 가정은 아주 큰 위안을 주었습니다.

지금은 영어 학원에 다니며 언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언어를 배우는 과정은 선교사들 사이에서 ‘광야’로 불립니다. 선교사로서 활동을 하기 전에 언어를 배우며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이 마치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단식을 하며 하느님을 만나는 과정과 흡사해서 그렇게 부릅니다. 언어를 배우는 데 따른 스트레스도 있지만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예전에 이태리어를 공부한 경험이 있어서 영어를 배우는 과정은 여유롭고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닥치고 보니 그 어려움은 여전히 존재하며 결코 건너뛸 수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으며 그저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영어를 연습할 기회를 좀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얼마 전 ‘알라마노 하우스’(수도회 국제 신학원)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40 copy.jpg 공동체를 잠시 소개해 드리자면, 유일한 아시아인이자 한국인인 저를 포함해 케냐, 탄자니아, 콩고, 모잠비크, 우간다, 에티오피아 그리고 콜롬비아 출신의 20명의 학생들이 생활하고 있어요. 처음 이곳에 와서 학생들 이름과 얼굴을 익히는데 일주일이나 걸렸어요. 어찌나 얼굴이 비슷하던지…. 주말이면 학생들과 함께 그들이 사도직을 하는 본당으로 활동을 나갑니다. 본당에 갈 때도 있고 공소에 갈 때도 있습니다. 어디를 가든 저는 중국인으로 불리며 호기심의 대상이 됩니다. 제 이름을 소개할 땐 어김없이 웃음의 도가니가 됩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은 알아듣지 못하는 중국어를 하며 저에게 인사를 하기도 하고, 저의 머리카락이나 피부를 만져보며 신기해합니다. 물론 의사소통엔 문제가 있지만 서로 웃으며 마음을 통합니다. 웃음 안엔 포함된 그들의 환영을 느낄 수 있기에 말입니다.

후원회 가족 여러분, 저를 위해서 많이 기도해 주십시오. 케냐에서 제가 잘 적응하며 기쁘고 행복하게 선교사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아직 짧은 시간이라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순 없지만, 이 글을 통해 잠시나마 제 경험을 나눠드려서 기쁩니다. 후원회 가족 여러분의 가정에 평화와 행복이 항상 가득하길 여기 케냐에서 기도 드립니다.

사순시기 피정│부산 연산 본당, 2010년 3월 23일

41-1 copy.jpg

 노베드로 신부

41-2 copy.jpg

 우리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 부산 회원들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