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조회 수 6862 추천 수 0 댓글 0
Extra Form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우리 가족들의 소식

남아프리카 - 주님의 위로를 함께 나누기

10.asp-x15.jpg
로꼬 마라 신부님과 한 성당의 청년들

남아프리카의 현지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 선교사들 모두가 특별한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렵고 시급한 문제는 사회 전체에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는 실업과 범죄의 증가, 토지 소유권 문 제, 에이즈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남아프리카의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는 이러 한 문제들을 걱정한 나머지, 선교활동 프로그 램 중에, 주로 청년들로 구성된 이 사회에 복음 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콰줄루 나탈 지 구의 던디교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코 마라 신부님은“청년들 가운데 도덕 가치의 몰락이 증가하고 있어, 가족이라는 가치를 더 이상 찾 아볼 수 없다. 그로 인해 HIV/에이즈와 많은 다른 사회적인 질 병이 증가하게 됐다”고 이야 기합니다. 인구의 자연적인 이동은 사람들, 특히 청년들이 자신의 가족과 부 족, 심지어는 종교에 대한 소속감 을 잃게 만듭니다. 그들은 한 가족 으로서 함께 지내며, 함께 기도할 기회를 갖지 못합니다. 많은 크리 스천들에게는 혼인성사가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으며, 나아가 성사 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것이 오래 지속되는 경우도 거의 없습니다. 우리 지구장인 요셉 마르틴스 신 부님은 선교사들이 남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진 실하고 의미 있는 위로를 전해주기 위해서는, 가족 정신과 일체감을 깊게 하는 것이 중요하 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우리는 마치 최초의 사도 공동체와 같이, 하나의 단체 로 일치해야만 하고 현지 교회와 협력해서 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사람들의 가슴에 꼰솔라따, 즉‘위로’의 이미 지를 보여주면서, 진정한 증거 공동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선교사들이 서로 간의 일치 의 정신과 형제애를 구축하기 위해서 한 달에 두 번씩 만나는 이유인 것입니다. 남아프리카에 있는 우리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는 던디, 프레 토리아(Pretoria), 더반(Durban), 요하네스버 그, 이렇게 네 곳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몽골에 대한 첫 인상 피터 투로네 수사 IMC

올해 6월 20일, 즉 꼰솔라따 성모님 축일에 로마에 있는 브라베타 신학교에 있던 우리들 중 몇몇이 선교사로 파견을 받았습니다. 우리 는「교회의 선교활동에 관한 교령-만민에게」 (Ad Gentes Divinitus)의 정신에 따라 양성되 었고 저는 이곳 몽골로 파견된 데 대해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몽골에서는 단지 바람소리만 들 릴 때가 많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는 8월 15 일, 성모승천 대축일이었으므로 매우 뜻 깊은 날이었습니다. 이날은 제가 수도자로서 서원을 한 지 3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울란바토르 비행장에서 우리의 남녀 수도자들 에 의해 따뜻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밖은 이미 어두웠으므로 이튿날이 되기까지는 이 새로운 나라를 자세히 볼 수 없었습니다. 미사를 봉헌 하고 우리는 시골에 있는 우리의 선교지 아르 베헤르로 갔습니다. 이 나라를 가로지른 저의 첫 여행은 잊을 수 없는 것이 됐습니다. 그때까 지 제가 이 나라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은 단지 꼰솔라따회의 정기 간행물에 나오는 사진들과 ‘몽골의 노란 개’(몽골의 유목생활에 대해 알 고자 하는 모든 분들에게 저는 이 영화를 보시 라고 강력히 추천해 드립니다)라는 영화를 통 한 지식이 전부였습니다.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것은 몽골은 드넓은 대 지에 인구가 적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축은 4천 만 마리나 되지만 인구는 겨우 260만 명입니 다. 끝없이 펼쳐진 평야에 여기 저기 몇 개의 게르(몽골의 텐트식 주택)가 있을 뿐입니다. 때 로는 목동들이 그들의 말, 야크, 염소, 그리고 낙타의 무리를 보살피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 어오곤 합니다. 저는 모래언덕 위에 멈추어 커 피(여행을 떠나기 전에 준비해 두었던 가루커 피)를 마시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습니다. 토론토와 로마라는 대도시에서 여 러 해를 생활했기 때문에 저는 매우 다른 세계 에 와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매일의 생활은 제가 신학교에서 살았던 때와 는 아주 다릅니다. 생활양식도 새로운 체험입 니다. 우리 선교사들은 우리의 모든 기도, 전 례, 사목, 장보기, 매일의 식사 준비 등을 우리 수도회의 수녀님들과 함께 합니다. 저는 정말 하나의 가정에 속해 있음을 느낍니다.

며칠 전 인도의 구와하티 교구장이신 토마스 메남파람필 대주교님께서 우리를 찾아 오셨습 니다. 그분은 몽골에 있는 모든 남녀 선교사들 (약 80명)을 만나러 오신 것입니다. 그분은 힌 두교도, 무슬림, 불교도들과의 체험을 기초로 우리에게 종교간 대화에 대해 여러 가지 모임 들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이 주제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이 나라는 거의 전 부가 전통적으로 불교 신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겨우 인구의 0.0003% 에 불과합니다.

10.asp-x16.jpg
피터 투로네 수사님과 다른 꼰솔라따 선교사들의 가정 방문

관광을 위해서가 아니고 선교라는 저의 사명 에 응답하기 위해 이곳에 왔기 때문에 저는 아 르베헤르에서 몽골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 다. 저는 매우 훌륭한 선생님으로부터 배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단순한 단어들을 기억 하는 데에도 얼마나 큰 안간힘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주 우리 선교지에 도움을 청 하러 오는 어린이들에게 가서 발음을 물어보곤 합니다. 그들은 얼마 동안 웃음을 터뜨리다가 웃음을 그치고 저를 도와주기 시작합니다. 문 제는 제가 그들의 발음을 따라 할 수 없다는 것 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몇 가지 안 되는 언어 와 비슷한 단어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의 창 설자 신부님께서는 언어는 매우 중요하다고 말 씀하셨습니다. 최근 아르베헤르의 우리의 선교 지에 한 여행사 직원이 왔었는데 한 어린이가 그녀에게‘베드로 아저씨’라는 말을 가르쳐달 라고 청했습니다. 어린이는 제가 그의 말을 이 해하지 못하는 것이 답답했 던 것입니다. 이 같은 사실 은 저로 하여금 더욱 더 열 심히 몽골어를 배우려 노력 하게 합니다.

이곳에는 대성당이 없습 니다. 그리고 아메리카나 유 럽과는 달리 다른 크리스천 정신의 역사적 흔적도 없습 니다. 우리는 아르베헤르에 작은 게르 교회를 가지고 있 는데 최근 6명의 여성들이 세례를 받았고 크게 호감을 가진 사람들이 주일 미사에 오고 있습니 다. 불교 전통을 지닌 사람들이 미사성제 중 거 양성체 때, 그들을 창조하신 분, 그들을 무한히 사랑하시는 분 앞에서 매우 큰 존경심을 가지고 절을 하는 것을 볼 때 큰 감명을 받습니다. 우리 가 저녁에 성무일도를 바칠 때 자주 기도문에서 읽고는하는 성 바오로의 말씀, 즉“그리하여 예 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 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 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 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필립비 2,10-11)라는 구절이 자주 제 마음 속에 울려오곤 합니다.

이 아름다운 나라에서 우리가 점점 더 강하 게 그리스도의 사랑의 증거를 보일 수 있도록,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 안에도 예수님을 따르고 자 하는 원의를 불러 일으켜주시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바야르타이(안녕히 계십시오)!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