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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 의 선 교
다문화 시대의이주민 복음 선교
최홍준〈꼰솔라따〉편집위원, 방송작가

외국어 주일미사 늘어나

서울 명동성당에서는 몇 해 전부터 매 주일 오전 9시에 여행자와 이주민들을 위한 영어미사를 봉헌하고 있고, 혜화동성당에서는 그보다 먼저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영어미사를 봉헌해 왔다. 혜화동에는 주로 필리핀 공동체가 참여하고 있고, 이 밖에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다른 나라 신자들도 이곳저곳에서 주일 미사와 만남의 모임을 마련하고 있다.

‘가톨릭신문’이 올해 시리즈 기사를 통해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보면, 가톨릭국가 나이지리아에서 온 임마누엘 씨는 2002년 한국에 왔다. 피부도 언어도 문화도 모든 것이 낯선 이국 땅에서임마누엘 씨는 제일 먼저 ‘성당’을 찾았다. 안산 반월공단에서 일하던 임마누엘 씨는 공장 동료의 소개로 인근 성당에 나가게 됐고, 그 곳에서 ‘수원 엠마우스’를 알게 됐다. 안산에서 수원까지 가깝지 않은 거리지만, 그는 매주 센터에 나와 미사를 봉헌하고 아프리카에서 온 동료들과 친교를 나누는 등 신앙활동을 이어갔다.2010년, 한국생활 9년 차인 그는 아프리카 선교 공동체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이곳에 잠시 왔다가는 사람일 뿐이죠. 하지만 이렇게 공동체를 중심으로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하느님이 우리 삶의 첫 번째이기 때문입니다.”

1995년 인터내셔널 공동체로 활동을 시작한 수원 엠마우스는‘일치’와‘통합’그리고 ‘자활’을 목표로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들을 아우르고 있다. 이 중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들 공동체들이 국가나 종교에 국한되지 않고 모두가 하나가 되는, 말 그대로‘다문화’의 길로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수원 엠마우스를 담당하고 있는 최병조 신부(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는 “이제는 각 공동체 형성의 단계를 지나, 공동체 간 연대를 통해 진정한 다문화의 길로 가야 한다”면서 “수원 엠마우스에서는 각 국가별 공동체 대표를 중심으로 한‘네트워크’구성에 힘쓰고 있다”고 신문 인터뷰에서 말했다. 베트남, 필리핀, 아프리카, 남미, 미주 및 유럽 국가 등 5개 국가로 나눠 활동하고 있는 수원 엠마우스 국가별 신앙 공동체는 각 대표를 중심으로 공동체간 연대를 다지며 신앙의 힘을 한데로 모으고 있다. 1995년 수원 고등동본당 영어미사에서부터 시작된 필리핀 공동체와 아프리카 공동체에 비해 뒤늦게 형성된 베트남, 남미 공동체는 필리핀 공동체를 통해‘공동체 생활’의 기초를 다지기도 했다. 공동체간 협력을 통해 더 큰 공동체로의 ‘통합’에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이주민 110만 명 시대- 교회의 대응

05.jpg2010년 현재 우리나라에 와서 생활하고 있는 이주민은 110만 명에 이르고, 이들에 대한 한국교회의 관심 또한 커지게 마련이다. 과거에는 해외에 나가서 살고 있는 재외 동포들에 대한 사목에 역점을 두었으나,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 노동시장 역사에 새로운 현상을 일으키게 됐다. 서울올림픽 이후, 국가산업분야에 이주 외국인 노동자의 수가 급격히증가한 것이다. ‘코리안드림’을 꾸게 된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을 찾기 시작한 것과 때를 같이 해서 국내 노동자들은 힘들고, 위험하고, 더러운 이른바 3D 업종을 회피하기 시작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부족한 인력을 대체하기 시작해 1990년대 중반부터 외국인 노동자들의 수는 더욱 늘어났으며, 특히 서울과 수원 등 수도권 지역에 그 수가 집중됐다.

이에 한국교회, 특히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는 늘어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1992년 이주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상담소를 개소하기에 이르렀다. 국내에서 ‘이주노동자 노동문제상담소’를 연 것은 교회가 최초였다. 1993년 11월, 외국인 산업연수생제도를 도입해 외국인 인력을 본격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한 정부의 대응보다 2년 앞선 행보였다. 1978년 국내 노동자를 위한 노동상담소를 한국 최초로 개설한 것도 교회였기 때문에 당시 교회는 사회의 가장 낮고 어두운 곳을 샅샅이 돌보는 시대의 파수꾼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교회 언론은 지적한다.

정부의 정책도 변화를 거듭했다. 해외투자기업연수생 제도와 산업연수생제도, 연수취업제, 취업관리제, 고용허가제, 방문취업제 등 다양한 제도를 통해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다양한 정책을 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외국인 노동자와는 또 다른 사목 대상이 등 장했으니, 바로 국제결혼 열풍을 타고 건너 온 ‘결혼이민자’들이었다.

결혼이민자 여성으로 구성된 ‘7국가 다문화 네트워크’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우즈베키스탄과 남미, 필리핀, 베트남, 중국, 태국, 일본 등 기타 국가를 포함하는 7국가 다문화공동체는 ‘자활’을 목표로 공동체 활동을 펼쳐왔고, 이 ‘연대’의 힘으로‘이중언어교실’, ‘수제초콜릿사업’, ‘ 다문화레스토랑’ 등 일자리 창출을 통한 취업의 꿈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작은 이들’에 대한 사랑

한국 가톨릭교회 이주사목의 활동원칙은 2004년 5월 3일 교황청이 반포한 교황청 이주 사목평의회 훈령「이민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Erga Migrantes Caritas Christi)」에 있다. 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는 전 세계적으로 2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관련된 이민현상의 새로운 흐름과 그 특징을 고려해 이민사목을 새롭게 하려는 데에 훈령 반포의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보다 앞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4년 1월 18일 제90차 세계 이민의 날 담화문 「평화의 관점에서 본 이주」에서 “각국 정부는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사회의 필요성을 고려하고 이주민들의 인간적인 품위와 가정의 필요를 최대한 존중하며 이민을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2005년 제91차 세계 이민의 날에는 “새벽의 파수꾼으로서 도움을 요청하는 수많은 이민들과 난민들의 호소에 귀기울여야 한다”며“더욱 개방적이고 일치된 사회의 새벽을 알려줄 희망의 미래를 적극적인 노력으로 키워나가자”고 강조했다.

베네딕토 16세 현 교황은 올해 2010년 제96차 세계 이민의 날 주제인 “미성년 이민과 난민”은 우리가 사랑해야 할 가장 작은 이라고 말하면서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 40)라는 성경 말씀처럼, 우리는 ‘미성년 이민과 난민’을 “가장 작은이들”로 여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수님도 어릴 때 몸소 이주를 체험하셨으니, 성모님과 요셉 성인과 함께 헤로데의 위협에서 벗어나려고 이집트로 피난을 가신 것(마태 2,14 참조)을 우리는 알고 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회칙「진리 안의 사랑」에서 이민 현상이 수많은 사람이 관련되어 있고, 그에 따른 사회, 경제, 정치, 문화, 종교적 문제를 가져오며, 국내와 국제 공동체에 심각한 도전을 제기하는 것에 커다란 우려를 표명하시면서, 이주민에게 어떤 처지나 상황에서 모든 이로부터 존중 받아야 하는, 양도할 수 없는 기본권이 주어져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62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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