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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의 일기
새로운 여정의 시작
한경호 마르티노 신부 IMC
34-2.jpg 회원 여러분, 지난번에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올 한 해 동안에는 우리의 꼰솔라따 신부님 두 명이 스페인과 브라질에서 내딛는 선교의 첫걸음을 우리와 함께 나눌 것입니다. 한경호 마르띠노 신부님의 이야기부터 먼저 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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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라가 공동체: 이탈리아 출신의 세르지오 테시오 신부님(좌)과
우루과이 출신의 호세 루이스 퀸티안 신부님과 한경호 마르띠노 신부님

한국을 떠나 15시간 만에 첫 선교지인 스페인 마드리드(Madrid)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스페인, 하면 푸른 하늘과 강렬한 햇빛을 연상하듯이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공항에 도착했습니다만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습하고 쌀쌀한 날씨와 기후에 조금은 당황했습니다. 더욱이 올해는 이상 기온으로 나라 전체가 비와 눈으로 뒤엉켜 북부 지방은 폭설이 내리고 남부 지방은 홍수로 인해 막대한 재산 피해와 더불어 인명 피해로 한동안 난리를 치르는 모습이었습니다. 스페인의 겨울은 우기(雨期)에 접어들기 때문에 비나 눈이 자주 내립니다. 이로 인해 제가 생각하고 꿈꾸어 왔던 맑고 푸른 하늘은 한참이 지난 뒤에야 볼 수 있었답니다.

다민족, 다언어

스페인은 다양한 민족들이 모여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라틴계 스페인인이 주를 이루며, 원주민인 이베리아인 (이베리아는 스페인 반도를 지칭함), 로마인, 게르만인, 아랍인 등 다양한 종족의 혼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공용어로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스페인어를 쓰고 있는데 엄격히 말하면 카스테야노(Castellano)라고 하는 것이 맞다고 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사람들이 “카스테야노를 배워야겠네”하기에 스페인어가 아닌 카스테야노를 왜 배워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카스테야노는 스페인어를 지칭하는 고유 언어 명칭이더군요. 이외에도 스페인에는 지방에 따른 공식 언어가 있는데 북부지방에서 사용되는 갈리시아어(Galicia)와 동부지방의 카탈루냐(Catalunya)어가 지방 공식 언어로 사용되고 있고, 우리나라의 사투리와 비슷한 몇개의 언어가 더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 언어들은 지역 정체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에 아직 스페인에 온 지 얼마 안 된 저로서는 그 연원(淵源)을 알기에 무리가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언어와 문화에 적응

여러분께서는 선교사가 어느 지역에 파견 되었을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선교사이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 그리고 말씀을 전하기 위해 언어를 공부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대목이겠죠. 특히 언어 문제는 선교사들뿐만 아니라 유학생, 이주민들에게 있어서도 단시간 안에 해결해야 하는 과제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선교사들에게 언어만큼 중요한 것은 바로 그들의 문화와 역사를 배우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그리고 의무적으로 공부해야 하는 과제라 여겨집니다. 제가 여기에 도착하고 느꼈던 것은 그 지방, 그리고 제가 만나고 관계하는 이들의 문화와 역사를 배우지 않고는 결코 그들의 사고방식과 생활 습관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스페인의 다양한 기후와 지형적인 특색으로 문화 또한 조금씩 지방마다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 중에 공통적인 모습을 보이는 독특한 생활 문화가 하나 있습니다. 제가 스페인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접한 것인데요, 이 색다른 문화는 바로 이곳의 식사 문화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점심은 오후 12시에서 1시 30분, 저녁은 오후 6시 30분에서 8시 사이에 먹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점심은 오후 2시~4시, 저녁은 밤 9시~11시에 먹는 것이 의례적입니다. 저도 처음 여기에 도착하고 나서 식사 시간 때문에 조금은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물론 아직도 이 식사 시간에 완전히 적응된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적응이 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스페인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여러 분들도 잘 알고 있는 ‘시에스타(Siesta, 낮잠)’ 입니다. 점심 식사 후에 갖는 이 독특한 낮잠은 다른 몇몇 유럽 국가에도 있기는 하지만, 이곳 스페인에서만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겨울철이라 ‘시에스타’의 중요성이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이곳 현지인들에게‘시에스타’는 식사 시간만큼 중요하고 행복한 시간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이곳의 기후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집니다. 여름철 낮 기온이 평균 30도 이상을 웃도는 이곳에서는 일의 능률과 건강을 위해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습관화되고 생활화되어 하나의 생활 문화로 자리잡은 것이 바로 이 ‘시에스타’인 것이죠. 점심 식사가 늦다 보니 당연히 저녁 식사도 늦을 수밖에 없겠죠? 늦은 식사시간과 기온의 영향으로 사람들의 여가 활동 또한 주간 보다는 선선한 야간에 많이 이루어집니다. 낮에는 관광객이나 회사 일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거리에 현지인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반면 저녁에는 대도시든 작은 마을이든 지역 중심지에서 여가를 즐기려는 현지인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가족 단위의 현지인들, 관광객, 그리고 젊은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거리는 그야말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룹니다. 그러다 보니 서비스 분야, 식당등은 밤늦은 시간까지 영업을 하고,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 또한 자정을 넘어 새벽 1시까지 이용할 수가 있습니다. 다행히 스페인에는 다른 유럽에 비해 치안이 안전한 편이라고 합니다. 물론 외곽 지역은 세계 어디나 위험하겠지만 말입니다.

이 새로운 환경 안에서 저는 앞으로 하나씩 천천히 적응을 해나가야겠지요. 새로운 환경이 주는 낯섦과 두려움이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는 스페인 특유의 다양하고 재미있는 역동적 삶이 펼쳐질 것을 생각하니 설레기도 합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성탄

한국에서는 성탄절 하면 소비 문화와 더불어 젊은 연인들을 위한 날처럼 보여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스페인에서의 성탄절은 가족의 날이라는 이미지가 더욱 강합니다. 우리의 설처럼 많은 사람들이 가족이나 친지들을 찾아 고향을 방문해 서로 우애와 친교의 시간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성탄절에 성당에 나오는 숫자는 그리 많지 않지만, 가족 단위로 참석하는 신자들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탄절하면 여러분이나 어린이들에게 연상되는 것이 바로 산타 할아버지와 선물이겠죠? 그런데 여기에서는 산타 할아버지의 이미지는 아주 미미할 뿐만 아니라 선물도 주지 않습니다. 전통적으로 스페인에서는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에 선물을 교환합니다. ‘동방박사의 날(Los Reyes Magos)’이라고 해서 어린 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날이죠. 선물을 가져다주는 사람도 산타 할아버지가 아닌 동방박사들입니다. 또 이 날은 각 도시마다 동방박사 퍼레이드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마구 사탕을 뿌려주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참으로 문화라는 것은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각자의 환경이나 관습, 생활 습관에 따라 고유의 방식으로 즐기게 되고, 발전하고 정착하니까요.

새로운 경험과 함께 시작한 새해

박호 신부님의 초대로 며칠 간 신부님 고향인 에스테포나(Estepona)에서 신부님 가족들과 연말연시를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박호 신부님 만큼이나 가족들 모두 친절하고 재미있었고,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의 모습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방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 그리고 한국에 다녀온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보냈답니다. 무엇보다 신부님 가족들과 함께 스페인에서의 첫 새해를 맞이할 수 있어서 즐겁고 기뻤습니다. 한국에서는 새해를 알리는 33번의 제야의 종소리로 새해를 시작하고 소원을 비는데, 여기 또한 종소리와 함께 새해를 시작합니다. 새해를 맞이하기 직전인 12월 31일을 노체 비에하(Noche Vieja), 즉 오래된 밤이라고 하는데요, 이날은 각 도시마다 큰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새해 종소리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새해 종은 모두 12번이 울리는데 바로 일년 열두 달을 의미합니다. 이때 사람들은 그냥 종소리만 듣는 게 아니라 전통에 따라 열두 알의 포도(청포도)를 먹습니다. 이 열두 알의 포도는 각 달의 행운을 상징하는 것으로 종이 한 번 울릴 때마다 한 알씩 먹습니다. 열두 알의 포도를 다 먹는데 성공하면 열두 달 내내 행운이 함께 한다고 합니다. 저는 포도 알을 씹을 시간이 없어 종이 울릴 때마다 하나씩 넣기만 하다 보니 종소리가 끝났을 때는 열두 개의 포도 알들을 입 안에 가득 물고 있더군요. 참으로 우스우면서도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미신 적인 풍습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광장이나 가정에서 가족들과 함께 종소리를 들으며 포도 알을 씹는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소박하나 깊은 신앙심

스페인의 교회 현황을 생각하면 암울하기 그지없다고들 합니다. 저희 선교사들 또한 긍정적인 모습보다 부정적인 모습에 대해 자주 이 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그만큼 이곳에서의 선교 활동은 그리 만만치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곳에 도착하고 맞이한 첫 대축일 미사인 성탄 미사를 어느 작은 성당에서 공동 집전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공동 미사를 집전할 때의 느낌은 놀라움에 가까웠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미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대체로 연세가 드신 분들이 많았고, 참석 인원도 얼마 되지 않아 실망스러울 정도였습니다. 물론 교회에 나오는 이들의 수가 적다는 것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적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지 못했던 그들이 보여주는 신앙의 모습은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미사 중에 보여주는 그들의 마음가짐과 태도는 정말 뭐라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강론 때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강론하시는 사제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그들의 모습은 저에게 많은 묵상을 하게끔 해주었습니다. 미사가 끝남에 동시에 물밀듯이 성당을 빠져나가는 한국의 성당 모습과는 달리, 서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나 성체 조배를 하거나 이방인인 저에게 먼저 다가와 마음으로 환영하고 관심을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저로 하여금 큰 용기를 갖게 했습니다. “예전과는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이념적인 것이 많이 바뀐 현실이지만 아직도 하느님에 대한 그들의 믿음은 변함이 없다. 단지 변한 것은 바로 우리 수도자, 성직자들이 예전만큼의 열정과 사랑, 그리고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일치를 이루려는 마음가짐이 변한 것뿐이다”라고 하신 어느 노(老) 사제의 말씀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말라가: 새로운 공동체의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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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가 공동체의 그리스도 왕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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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로 유명한 말라가의 아름다운 해변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스페인에서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 선교사들이 활동하는 곳은 마드리드(Madrid), 사라고사(Zaragoza), 엘체(Elche), 그리고 말라가(Malaga) 이렇게 4개 도시에 걸쳐, 8개국 14명의 선교사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저는 스페인 남쪽 휴양 도시로 유명한 안달루시아(Andalusia) 지방의 말라가 공동체로 파견되었습니다.

말라가는 인구 60만의 중소도시이지만 여름 휴가철에는 인구가 120만에 이르는 대도시로 탈바꿈하는 유동인구가 많은 곳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아시는 에우제니오 신부님과 박호 신부님의 고향 도시이기도 하지요. 말라가는 한국에는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코스타델 솔 (Costa del Sol)이라는 휴양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인만큼 말라가는 다른 지역에 비해 다양한 이주민들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당연히 도시 빈민촌을 이룰 수밖에 없는 현실에 직면하게 됩니다. 특히 저희 공동체가 위치한 지역은 집시(Gitano)들과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가난한 지역과 이웃해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 가지 범죄에 노출되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곳 저희 공동체는 저를 비롯해 이탈리아 출신 세르히오 (Sergio) 신부님과 우루과이 출신 호세 루이스(Jose Luis) 신부님, 이렇게 3명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저희 공동체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선교 교육과 더불어 이주민 노동 사목, 평신도 선교사와의 협력과 지원, 그리고 준본당을 가지고 있기에 지역 교회와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곳 공동체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이웃 종교에 열려있다는 것입니다. 말라가에서 유일하게 매 주일과 금요일에 정교회의 미사가 봉헌되고 있으며, 이주민들을 위한 자국 미사, 또는 기도를 봉헌할 수 있도록 본당을 개방하고, 이밖에도 다양한 기도 모임을 지도하고 육성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저는 이곳에 적응하는 단계이며, 또 언어를 우선적으로 배워야 하는 입장이기에 두 신부님들과 사도직 동행을 하고 보좌를 하는 선에서 선교의 정신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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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대축일에 꼰솔라따 평신도 선교사 가족과 함께

많은 인종과 문화가 함께 어우러지고 공존하는 이곳, 어쩌면 다양한 것을 접할 수 있는 저에게는 하나의 축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저 또한 이곳에서는 이방인이기에 그들의 문화 안으로 들어가기에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 없이 그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의 신앙과 삶을 나눌 수 있을 테니까요. 물론 다른 문화와 다른 민족 사람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10년 가까운 양성 과정 기간 동안 다양한 문화와 다국적 공동체 안에서 생활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제 마음 안에는 다른 문화와 피부 색깔을 가진 이에 대한 이질감을 느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생활하며, 또 이들을 위해 제가 일을 할 수 있을지, 또 제가 얼마만큼 이들을 그리스도적 형제애로 아무런 거리낌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 그것은 전적으로 저의 노력과 마음가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지역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를 알면 알수록 어쩌면 더욱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통이나 고민, 갈등, 어려움 등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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