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06호

06-우리 수도회는 폴란드어로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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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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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꼰솔라따 성모님의 대축일 미사 후에 친교를 나누는 우리 실바누스 스터크 신부님(오른쪽),
아베베 신부님(오른쪽에서 세번째)과 우리 수도회의 폴란드 친구들

 

우리 수도회는 폴란드어로도 말합니다
실바누스 스터크 신부 IMC
우리 수도회는 2008년 4월 폴란드에 진출했습니다. 폴란드는 동유럽에서 가톨릭이 가장 강한 나라이지만 더 많은 성소(聖召)를 찾을 수 있도록 젊은이들과 함께 일하기 위해 이곳에 수도회를 열기로 한 것입니다. 어쩌면 미래에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 러시아 등 다른 인접한 나라로 진출할 가능성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번 호에는 실바누스 스티크 신부님께 폴란드에서 한 경험을 들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간략한 폴란드 소개

“우선 폴란드에 대해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약 3,400만 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 폴란드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966년부터 하나의 나라로 존재했습니다. 1795년 프러시아, 러시아, 오스트리아가 폴란드의 영토를 분할해 각기 일부를 자기 나라에 편입을 시켰는데,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다시 독립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자유는 오래 가지 못 했고, 1939년 나치가 다시 폴란드를 점령합니다. 2차 대전 이후에도 폴란드는 러시아라는 제3국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됩니다. 그러나 공산체제에 대한 지속적인 저항으로 1980년에는 노조운동가인 레흐 바웬사가 이끌고 폴란드인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가 지지한 자유노조 ‘연대’(Solidarity)가 탄생했습니다. 1989년 폴란드는 레흐 바웬사를 새로운 폴란드의 대통령으로 선출함으로써 완전한 자유를 쟁취하게 되는데 실제로 폴란드는 동유럽 국가 중 가장 먼저 공산주의에서 벗어난 국가입니다.

우리 공동체

폴란드의 우리 공동체에는 이탈리아, 에티오피아, 탄자니아의 세 나라에서 온 세 분의 선교사가 있습니다. 다양한 인종이 함께 하는 모습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다른 우리 수도회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이곳 공동체의 특징이 되고 있습니다. 가장 젊은 신부님은 에티오피아인으로 사제서품을 받은 지 1년 되는 아셰나피 아베베 신부님입니다. 아베베 신부님은 콜롬비아에서 신학을 공부했는데, 사교적인 성격에 공부와 스포츠를 아주 좋아하는 분으로서 2008년 11월 18일 이곳에 왔습니다.

루카 신부님은 이탈리아 사람인데 로마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3년 전 서품을 받았습니다. 우리 공동체의 회계책임자인데 선교 영성의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저는 실바누스 스티크라고 하는데 탄자니아 사람이고 10년 전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로마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폴란드로 오기 전 이탈리아와 포르투갈에서 일했습니다. 저와 루카 신부님은 2008년 4월 16일 폴란드에 도착했습니다. 국제적인 성격 외에 우리 공동체의 가장 아름다운 특징은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주는 가족적이고 친구 같은 관계인데, 우리 사이의 이런 관계가 모든 이에게 인상을 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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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신부님(오른쪽)이 콤보니 선교 수도회 신부님들과 함께

초기의 어려움

폴란드에서 만난 첫 어려움들은 언어와 콤보니 선교 수도회와 함께 한 수개월 동안의 생활, 그리고 체류허가를 위해 서류를 준비하는 문제, 높은 집세, 기후, 음식 등이었습니다. 폴란드어는 배우기 가장 어려운 언어 중 하나인데 특히 발음이 어렵습니다. 당연히 1년이 지난 뒤에도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잘 전달하지 못합니다. 언어를 배우는 데는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지만, 언어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미 사람들을 만나, 우리의 생각을 전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어려움은 콤보니 선교 수도회의 선교사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우리는 그분들의 너그러움과 가족적인 환대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것은 그분들의 생활방식에 적응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그분들은 어떤 일을 조직하는 방식에서 우리와 무척 다릅니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분들에게 매우 감사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분들 덕분에 폴란드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의 1년 가까이 함께 생활한 후 우리는 아주 작은 집을 하나 구해 지금까지 이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비자와 체류허가를 위한 서류들도, 특히 오래 걸리는 시간 때문에 걱정을 하게 만들었는데, 결국은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아무 문제없이 다 잘 되었습니다. 또 다른 어려움은 폴란드어를 배우는 수강료와 집세가 비싸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비용은 로마에서 보내옵니다. 그 다음으로는 적응하기 어려운 추위와 엄청나게 많이 내리는 눈이었는데, 이제는 이 모든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습니다. 음식 역시 어려움 가운데 하나였는데, 처음 몇 달이 지난 뒤에는 폴란드 음식의 맛에 익숙해졌습니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어떤 면에서 이미 예상되는 것으로서, 많은 사람들과 교구 사제들이 우리가 폴란드에 오게 된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분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을 하곤 했습니다. “가톨릭 신자가 90% 이상 되는 우리나라에 왜 왔지요?”두 번째 질문은 “이곳에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하지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분명하게 폴란드에 온 이유가 선교활성화와 새로운 성소개발을 위해서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로 가톨릭 신자의 수가 적은 동유럽의 다른 나라로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도 들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당면한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폴란드에서의 선교 활성화를 위한 프로젝트와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과 젊은이들을 맞이하기 위한 우리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쁨과 희망

우리의 기쁨은 앞에서 언급한 모든 어려움들을 극복했다는 것입니다. 언어면에서도 우리는 아주 좋은 결과에 이르렀는데, 올 여름이면 아마 100% 활동을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콤보니 선교수도회의 선교사들과도 진정한 우정과 협조관계를 이루었습니다. 경제적인 측면도 언어를 정복하고 신앙과 관련된 다양하게 봉사할 수 있도록 소통을 할 수 있으면 조금씩 극복될 것입니다. 젊은이들을 위한 시설 역시 본당 신부님과 아주 긴밀한 우정의 관계를 맺을 수 있었기 때문에 적어도 다음 해에는 우리가 속한 본당의 시설을 이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선교 사업을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예수님이 하셨듯이 많은 사람들과 우정의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이교구에 받아주고, 또 아주 여러 번 만나 뵌 바르샤바의 카르지미에르즈 대주교님과도 좋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미 교황청 전교기구 폴란드지부(Pontifical Mission Societies in Poland)와 폴란드 선교사 양성본부, 성베드로 클라버 수도회의 수녀님들, 그리고 크라쿠프의 카르멜 수녀님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실제로 성베드로클라버 수도회의 수녀님들과는 이미 여러 본당에서 선교활성화 활동을 했습니다.

이런 모든 것 외에도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아주 특별한 선물을 받았는데 그것은, 자신의 성소를 더 잘 깨닫기 위해 우리를 더 깊이 알고자 하는 폴란드 인 성소자입니다. 이를 위해 그 사람은 한 달에 한 번 주말을 우리와 함께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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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어를 통한 첫 번째 발걸음과 선교 사목

아직 언어를 잘 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미 선교적인 특징을 지니는 활동을 했습니다. 청소년과 젊은이 세계와의 첫 접촉을 위해 세 개의 인문계 고동학교를 방문했는데 그들은 우리를 아주 잘 받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꼰솔라따 선교수도회와 이곳 폴란드에서 우리가 전개하고자 하는 선교 사업에 대해 말하기 위해 다섯 개의 본당을 방문했습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 몇몇 사람들과 관계가 태어났고, 미래에 연락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많은 본당신부님들로부터 관심과 환대를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래에 우리가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미 우리는 젊은이들을 여럿 알게 되었고, 이들 중 몇몇은 우리의 집을 방문합니다. 물론 이들과 일을 잘 하려면 언어를 잘 배우는 것에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폴란드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쳉스토호바의 유명한 성지에 순례를 가는 것이 관습이기 때문에 많은 그룹의 젊은이들이 그곳에 순례를 가곤 합니다. 우리도 이미 우리 지역의 많은 젊은이들과 함께 한 번 그곳을 다녀왔습니다. 이 것은 우리에게 폴란드의 종교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 사이에, 그리고 신앙 운동 단체들 사이에 우리를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친구들과 협력자들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시간을 할애하는 등 도와주고 있고 선교활동에 협력하고자 하는 의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 역시 우리가 많이 감사하는 하느님 사랑의 섭리를 보여주는 징표들입니다.

폴란드 교회의 선교 현실

폴란드 교회는 공산주의 시절 아주 어려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삶에 참여하는 많은 신자들의 참여로 특히 전례 부문에서 강하게 살아남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본당은 교회의 삶에 있어서 가장 견고한 부문입니다. 따라서 주일마다 성당에 가고 정기적으로 고해성사를 보는 신자들의 비율이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매우 높습니다. 다른 동유럽 나라와 비교해서 성소의 비율도 높습니다. 제 생각에 약 200여명의 신학생이 있고, 지난해에 40명의 새로운 신학생을 받아들인 타르노프 신학교의 경우 전 유럽에서 가장 큰 신학교입니다.

민간신앙 안에도 특별한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성당에서 그림이나 고상을 발견할 수 있는 자비의 예수님, 쳉스토호바의 성모님, 검은 성모님, 막시밀리안 콜베 성인, 그리고 당연히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등입니다.

동시에 폴란드 교회는, 세계 곳곳으로 선교사들을 파견함으로써 조금씩 보편교회로 그 차원을 넓혀갔습니다. 세계 53개국에 선교사를 파견한 타르노프 교구가 구체적인 예일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폴란드 교회는 아프리카와 동유럽, 라틴아메리카에서 크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피데이 도눔’(fidei donum), 곧 ‘일정 기간 다른 나라에 선교사로 가는 교구 사제’의 숫자도 아주 많습니다. 이를 위해 사제들은 수도 바르샤뱌의 선교사 센터에서 특별한 양성 교육을 받습니다. 예를 들면 지난해에는 여러 교구 출신으로 자메이카, 그린란드와 잠비아, 그리고 심지어 저의 조국인 탄자니아로 파견된 많은 젊은 사제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가 할 일은 많은 선교사와 사제를 공유함으로써 보편교회를 향해 더욱 더 개방하도록 폴란드 교회를 돕는 일입니다. 우리는 사제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 수도회에 대해 관심을 갖고 또 우리가 세계 곳곳에서 하는 일에 대해 관심을 갖는 데에 대해 만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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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베 신부님(왼쪽)과 실바누스 신부님(앞줄 오른쪽)이
우리 수도회 홍보를 위해 방문한 본당에서 청년들과 함께

미래를 위한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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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우리는 셋집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정착할 곳이 어디가 적당한지 알아보고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가 위치할 장소가 어디인지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관심이 가는 가능성이 있는 몇몇 지역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바르샤바에 남는 것인데 이곳은 우리가 이미 어느 정도 적응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교통이나 서류 등 수도이기에 가능한 여러 가지 편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고, 또한 다양한 선교 사업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주교님의 지지를 받고 있고, 지리적인 측면에서도 이곳은 폴란드의 중앙에 위치해 있습니다.

두 번째 가능성은 폴란드의 남쪽 지역입니다. 그곳에서 우리가 비교적 잘 아는 두 개의 교구는 크라쿠프와 타르노프 교구인데 이곳에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 있습니다. 이곳은 많은 수도자들이 우리가 하고자 하는 선교활동에 가장 적합한 지역이라고 추천해주는 곳입니다. 실제로 이 나라의 다른 지역에 비해 이곳은 세속화의 영향을 덜 받은 곳으로 가정들이 신앙의 분위기를 더욱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미사와 신앙생활에 참여하는 정도가 폴란드의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더 높고, 이런 점은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크라쿠프는 수도 바르샤바와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편의성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세 번째 가능성은 폴란드 동남부의 루블린 시입니다. 그곳에는 많은 대학생들이 있고, 우크라이나와 접촉이 수월한 곳입니다.

우리 공동체의 주된 목표는 선교정신을 북돋고 선교영성을 고취하는 센터를 여는 것입니다. 우리는 젊은이들과 어린이, 가정, 사제와 수녀님들과 함께 일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젊은이들과 사제들에게 우리 수도회의 영성에 바탕을 둔 선교영성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본당과 교구에 우리의 선교봉사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한국에 있는 우리 친구들에게 우리 수도회 안에서 여러분이 하시는 모든 일과 현존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어머니이신 꼰솔라따 성모님께서 언제나 평화와 위로로 여러분들을 축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