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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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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희 니꼴라오

하얀 꽃이 내리는 겨울 09-12-27

나는 어느 날부터 틈이 나는 대로 모여 이야 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고향으로 가자 고 했습니다. 스페인. 처음 그 순간 나는 생각했 습니다. 흩어져 있던 나를 다시 모이게 하고, 열 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 다. 나의 고향은 이 이야기의 주춧돌이 되어 생 각의 가지들이 마구 뻗쳐 나갔습니다. 그 생각 의 가지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가지와 새싹을 이 끌어 냈고 결국‘까미노’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까미노(camino: 걸음, 걷기, 길. 까미노 데 산 티아고라고, 성 야고보 사도의 무덤이 있는 이 곳까지 프랑스 남단에서부터 걸어서 가는 순례 길). 이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던 것이었습니다. 내가 모이려고 한 그 순간부터 생각하던 것과 아주 잘 맞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아름다운 꽃이 피는 봄 10-04-18

배낭과 침낭, 옷, 세면도구, 매트 등 여러 필 요한 것들을 모았습니다. 또한 내가 걸을 그 길 을 생각하며 이곳에서도 걸었습니다. 나와 다 른 사람들이 함께 걸었습니다. 그 속에서 나는 많은 이들과 나의 생각과 말을 나누었습니다. 그때에 나는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많이 얻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상처, 직장에서 받는 스트 레스, 종교에 대한 믿음, 이뿐만 아니라 수많은 것들이 조금씩 치유되기 시작했습니다.

믿음과 용기와 지혜. 나를 믿고 남을 믿을 줄 아는, 어둠과 추위 배고픔과 피로가 찾아와도 이것들을 이겨낼 용기, 몸과 마음이 힘든 이를 잘 이끌어 줄 수 있는 지혜. 이 세 가지는 다른 준비물들과는 달리 아무리 준비해도 지나치지 않았고 오히려 늘 이것에 목이 말라있었습니 다. 그래서 나는 이 여행을 위해 툭하면 타던 자가용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타던 택시와 버스도 잠시 멀리하고 혼자서도 걸었습니다. 그건 나에겐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000 미터가 되었건 2000미터가 되었건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거리는 나에게 있어서 단순히 숫 자에 불과했고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무더운 여름의 봄날 10-07-23~10-07-24

이 순간만큼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무척이나 들떠있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수많은 까미노보 다도 이번 까미노가 끝나면 변해있을 나를 상상 하며, 걷는 동안 기도한 것들이 모두 이뤄지는 것을 꿈꾸었습니다.

작은 봄날의 느낌을 가지고 나는 나의 가족, 친구, 애인을 잠시 뒤로 하고 하늘 높이 날아올 랐습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라 외롭지 않고 아 주 편안하게 갔습니다. 하늘에서의 까미노가 끝나고 나는 먼저 온 일행과 함께 아스토르가 (Astorga)를 향해 갔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우 리 나라와 큰 차이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하지 만 나는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금세 알 게 되었습니다. 나는 시차적응을 하기도 전에 그곳의 느낌과 사람, 음식, 문화에 먼저 매료되 었기 때문입니다. 나를 따뜻하게 맞아준 숙소 주인장, 새로운 음식, 인종과 나이를 뛰어넘는 배려 이러한 것들은 시간이 바뀌어 몸이 힘든 나에게 즐거운 충격이었습니다. 그 동안 살면 서 항상 새로운 것들을 보고 느끼고 생각했지 만 그 순간만큼은 어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와도 같았습니다. 이 종소리는 지쳐있던 나의 몸과 마음을 북돋았습니다. 그래서 걷기 전날 수많은 사진과 글들을 남길 수밖에 없었 습니다. 그러면서 나는‘오길 정말 잘했다고, 이 여정이 끝나면 분명히 나는 바뀌어 있을 거 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나는 저녁 9시 에도 해가 떠있는 스페인, 아스토르가에서 하 루를 걸었습니다.

음식과 기도의 25km 10-07-25

해가 뜨기 전 새벽 5시. 이곳에서의 첫날, 나 에게 기분 좋은 것들을 준 아스토르가 에서의 기억을 내 마음 속 배낭에 넣어둔 채 걷기 시작 했습니다. 이곳 나의 고향은 너무나 아름다웠습 니다. 어둠이 만연한 그 시간, 하늘엔 태양 대신 달과 별이 있었고 혼자일 것만 같았던 그 길에 는 나의 동료와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나 는 모두와 함께 어둠을 걷어내고 있었습니다. 조금씩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며 우리는 작은 성당 한 켠에 앉아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배가 고팠기에 음식과 물을 꺼내었고 다른 이들과 나누었습니다. 그 때의 음식과 휴식은 달콤했 고 출발하려던 찰나, 나는 친구들을 불러 모았 습니다. 우리가 늘 날마다 먹던 양식으로 배를 채웠으니 그분의 말씀으로 마음을 채우기 위해 서였습니다. 사실 나는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줄을 몰랐고 하고 싶지 않았습 니다. 내 몸과 마음에 와 닿지 않았기 때문입니 다. 하지만 나는 모두와 함께 기도했고 왠지 모 를 몸과 마음의 포만감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나는 이날 걸으며 많은 사람과 자연을 맞이했 습니다.

걷는 동안 아무 생각이 없을 때도 있었고 내 두 발만 보며 걸을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 언가 나를 이끌어주었기에 무사히 폰체바돈 (Foncebadon)의 작은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걷 기 시작한 첫날, 두 번째 도장을 찍으며 기뻐했 습니다. 도착했을 때 나와 이곳에서 만난 친구 들을 따뜻하게 맞이해주신 이곳 봉사자는 의사 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발과 다리, 마 음을 어루만져주었고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 주 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각자의 침대를 정하고 짐을 푼 뒤 곧바로 식당(cafe bar restaurant) 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걷는 동안 사귄 독일 커플을 만났습니다. 반가움에 인사를 나누고 다 음을 기약하며 그들은 먼저 자리를 떠났습니다. 나는 그들을 떠나 보내고 즐거운 점심식사 시간 을 맞았습니다. 이곳 스페인의 날씨는 덥지만 건조합니다. 그래서 짠 음식들이 많습니다. 하 지만 가는 곳마다 개성이 넘치는 와인과 음식들 의 조화는 아주 훌륭했습니다.

식사를 끝낸 후에는 누구는 낮잠을 자기도 했 고, 또 다른 이는 새로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 누며 즐거운 오후를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숙소 한 켠에 자그마한 공간에서 나와 친구들은 모여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미사가 시작되고 난 뒤 나는 서로에게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 페인어와 영어, 이탈리아어를 써가며 서로가 조 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두를 위해 이 탈리아어와 한국어를 써가며 이색적인 미사를 만들었습니다. 미사가 끝난 뒤 모두가 모여 저 녁식사를 준비했고 함께 노래를 부르며 그 시간 을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행복해서 힘들지 않은 길 07-26~08-05

20km라는 화끈한 신고식을 무사히 마치고 또다시 걸었습니다. 매일매일 걷기와 휴식을 반 복하며 그렇게 자신만의 까미노를 조금씩 만들 어갔습니다. 둘째 날, 폰페라다를 향해 가는 날엔 어느 순 간 모두가 흩어져 따로 걸었습니다. 그 가운데 몇 명은 걱정과 불안을 가지고 걸었고, 다른 이 들은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며 함께 걸었고, 또 아주 편한 마음으로 걸었던 이도 있었습니다. 처음 보았지만 서로가 격려를 해주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기도 하며 몸은 따로 떨어져 걸었지 만 마음만은 함께 걸었던 날이었습니다. 각자가 힘들게 걷고 난 뒤에는 니콜라스 알베르게가 모두를 맞이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다른 공동 체와 서로 소개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아름다 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비록 말은 제대로 통하 지 않았지만 모두가 걷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힘든 만큼 기쁘고, 함께한 만큼 즐겁고 그렇 기에 행복한 길. 오 세브레이로 직전 마을까지 (폰페라다에서 베가 델 발카르쎄) 이틀에 걸쳐 약 41km를 걸었습니다.

구름 한 조각, 그늘 한 조각 그 어느 것 하나 없던 순간, 물이 없어 지쳐가던 순간, 화살표를 따라갔지만 남들보다 길을 더 돌아갔던 순간, 온몸이 쑤시고 아파 걷기조차 힘들었던 순간. 이 모든 기억들을 어루만지며 추억으로 바꾸는 일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맛있는 음식, 아늑한 보금자리 이러한 것들보다 남녀노소, 종교, 국 가, 인종 모두를 무시한 채 우리보다 더 힘들어 보이는 사람들이 건네는 격려의 말 한마디, 비 록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함께 했던 미사, 기도 와 나눔을 함께 해준 그곳에서 만난 고향 친구 들. 이것은 41km라는 거리를 무색하게 할 만큼 아주 훌륭한 음식이자 물이었습니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 한 발자국 더 다가가게 된 계기는 빌라프란카 델 비에르소에서 있었습 니다. 저녁 무렵 숙소에서 나와 천연 수영장이 있는 곳으로 모두가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한 사람씩 이야기를 할 때마다 여러 사연을 들었고 그 전까지의 느낌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강을 앞에 두고 또 다른 강을 만들었지만, 주위의 시 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금씩 마음을 나누고 기도했습니다.

가장 아름답지만 그만큼 힘들 길. 오 세브레 이로를 향해 가는 길. 수많은 사람들이 걱정하 고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나는 씩씩하게 걷고, 산을 탔습니다. 전체 일정 중에서 가장 짧은 거 리이지만, 산을 오르는 것이라 결코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새벽 일찍 다른 순례자들과 함께 출발했던 탓인지 12시 정도에 무사히 도착했습 니다. 평소에 산을 잘 가지 않았던 터라 가장 걱 정이 큰 날이기도 했지만, 아무 말 없이 걷는 이 들을 보며 묵묵히 걸었습니다. 물론 너무 힘들 어서‘왜 왔을 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 짜 증도 났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잠시 쉬며 주변을 돌아보며 나 자신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길이 험해서, 날씨가 너무 더워서, 배낭이 무거 워서가 아닌 단순히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도착해서 짐을 풀고 숙소를 나와 산 아래를 내려다보는 그 순간. 지금까지의 안 좋은 것들 이 싹 날아가기도 했고, 이 순례가 금방 끝날 것 같은 느낌과 끝나고 나서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내 모습이 문득 생각이나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트리아카스텔라, 싸리아. 이곳을 지나면서 역 시나 많은 순례자들과 자연을 만났고 마을마다 있는 크고 작은 성당과 수도원을 보았습니다. 길을 만들어가는 동안, 많은 것을 보고 또 보았 지만 이때처럼 따스함을 느낀 적은 없었습니다.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기도를 할 때에는 수도원 건물과 그 주위를 감싸고 있는 자연이 나를 꼭 안아주는 것 같았고, 크고 작은 여러 성당을 보 고 또 그곳에서 기도할 때는 마음만큼은 마치 어머니 품에 안긴 듯 편안했습니다.

이 여정에서 어제와 다른 또 하나의 즐거움은 나도 함께 춤을 추며 즐거운 시간을 가진 것이 었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음악에 몸을 맡기고, 역시나 처음 만난 분들과 함께 춤을 추고 노는 것은 정말로 아름답고 재미있었습니다.

포르토마린, 팔라스 데 레이, 아르수아, 아르 카 데 피노. 이 마을들을 4일에 걸쳐 약 95km 를 걸었습니다. 이 기간 중에 하늘에서는 나에 게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목적지인 산티아고까 지 함께 갈 수 있도록 친구를 보내주셨습니다. 새로운 친구를 받아드릴 때에는 아무런 근심과 걱정, 고민조차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드 렸습니다. 함께 걷고, 함께 먹으며 또 함께 즐기 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기에 너무도 행복 했습니다.

하루하루 걸어갈 때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 나기도 하고 며칠 전 혹은 몇 시간 전에 만난 친 구도 다시 만났습니다. 이탈리아의 수학선생님, 독일에서 온 연상연하커플, 말은 잘 통하지 않 았지만 서로의 안부를 계속 물어보았던 프랑스 노부부, 성악을 전공하는 친구, 친구와 함께 왔 지만 따로 떨어져서 걷고 있는 수의학과 학생, 열심히 기도하며 걷던 남매 등 아름다운 만남은 어김없이 나에게, 우리에게 찾아왔었습니다. 그 렇게 우리는 만나서 함께 기도하기도 했고, 한 국어로 하는 미사를 함께 하며 각자가 기도하는 것은 다르지만 그 모든 것이 이루어지리라 믿고 계속 새로운 인연을 이어나갔습니다.

기쁨의 언덕 20km

무엇보다도 걱정이었던 것은, 이제 마지막 날 인데 변하지 않는 내 모습이 슬프게만 느껴졌습 니다. 이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예전 의 내 모습이 그대로 이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해가 뜨면 어김없이 출근하고, 학교와 학원을 가고, 시험을 위해 공부하는 모습들이 걷는 동 안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마냥 걷다가‘기쁨의 언덕’에 다가갔습니다. 정말이 지 언덕이라고 하기엔 조금은 벅찬 언덕이었습 니다. 푸른 언덕에 커다란 조각상이 자리 잡고 그 주위를 향해 소리치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 런데 이상했습니다. 분명히‘기쁨의 언덕’인데, 그렇게 기쁘지가 않았습니다. 함께 웃고 사진도 찍었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주 화창한 날씨에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만은 싱숭생숭했습니 다. 그래서 나는 그곳의 아주 작은 성당에서 즐 거운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고 서 둘러 길을 떠났습니다.

산티아고 도시가 보이기 시작했고, 수많은 순 례자와 관광객들로 인해 상상했던 그 모습과는 다르게 정말 즐겁고 마치 축제의 한 부분에 온 것 같았습니다. 순례를 무사히 잘 마쳤다는 증 명서를 받았습니다. 올해가 성 야고보의 해라는 특별한 것까지 표시되어있는 그 증명서를 손에 쥔 그 순간, 내 자신이 자랑스럽고 뿌듯했습니 다. 이 모든 여정의 마침표를 찍으며 11명이 아 닌 12명의 제자들은 그 동안 아낀 돈으로 최후 가 아닌 최고의 오찬을 즐겼습니다.

돌아가는 길 257km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왠지 행복하 고 무언가를 이뤘어야 하는 느낌이 가시지 않았 습니다. 여행의 시작을 앞두고 기도했던 것들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그렇게 아쉬워하며 스페인을 떠났습니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집 으로 가는 차 속에서도‘왜?’라는 단어는 떠날 줄 모르고 나에게 궁금증만을 주었습니다. 그러 다 다음날 혹은 며칠 뒤 여느 때처럼 회사에 출 근하고 학교에 갔습니다. 나만의 미스터리 사건 으로 마음속에 묻힐 때쯤, 이 여정을 위해 모였 던 것처럼 모두가 한 곳에 모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나는 다시 한 자리에 모여 그 동안의 서로에 대한 안부 를 물었습니다. 여행을 통해 또 다른 아버지의 느 낌을 알게 된 이 도 있었고, 이번 여행과 그 동안의 삶을 되돌아보며 반성과 용기를 얻게 된 이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묻습니다. ‘왜 이곳에 왔 습니까?’라고. 처음에는‘순례 길이 어떤 것인 지, 그 길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알게 된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그 순례 길이 아름다운 것은 길 자체가 아름다 운 것이 아니라 내가 그 길을 걸었기 때문에 아 름다운 것이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부활을 느끼고 변해가는 자신을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디서든지 누구와도 새로운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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