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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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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부티의 한 병원에서 활동하고 있는 폴란드 출신의 꼰솔라따 수녀님

 

100년 간의 위로

안젤라 만티네오 수녀님 MC

복자 알라마노께서는 우리 수도회 뿐 아니라 꼰솔라따 수녀회도 창설하셨는데 그 수녀님들이 한국에는 계시지 않지만, 몽골을 포함해 약 20개국에서 선교활동을 펼치고 계십니다. 2010년은 그분들에게 매우 특별한 해입니다. 우리의 복자 요셉 알라마노 신부님께서 1910년, 그러므로 정확히 100년 전에 그분들 의 수녀회를 창설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카리스마와 같은 영성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수녀님들의 역사와 선교활동에 대해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창설 후 100년 간의 선교활동을 통한 우리의 기쁨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수녀님들 중 한 분에게 그 역사를 간단히 들려달라고 부탁했으며, 수녀님께서는 여러 장면의 사진과 더불어 기사를 보내주셨습니다.

---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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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우리의 첫 선교사들이 케냐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여러 해 동안 이탈리아의 한 수녀회인 코톨렝고 수녀님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 수녀님들은 특히 여성들을 그리스도교적으로 양성하고 생활조건을 향상시키는 데 헌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해가 감에 따라 우리 선교사들의 활동이 계속 증가했고 이 수녀님들은 또 다른 영성과 수련방식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우리의 선교사들은 우리 창설자에게 함께 일할 수 있도록 수녀님들을 양성해 주십사고 청했습니다. 그리하여 1910년 1월 29일 알라마노 신부님께서는 꼰솔라따 선교수도회 창설 10주년에 이탈리아 토리노시, 아오스타의 두카가에 꼰솔라따 선교 수녀회를 세우셨습니다. 젊은 청원자들의 양성을 위해 알라마노 신부님은 성 요셉회의 수녀님들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4월에 첫 후보자들이 받아들여졌고 11월 21일, 12명의 젊은 여성들이 수도생활과 선교를 위해 양성되기 시작했습니다. 3년 후, 1913년 10월 28일, 꼰솔라따 선교수녀회의 첫 15분의 수녀님들이 알라마노 신부님과 카미자싸 신부님이 동석하고 계시는 자리에서 리켈미 추기경님으로부터 장엄하게 선교의 십자가를 받게 됐습니다. 카미자싸신부님은 우리 창설자의 친한 친구요 협력자이셨고, 리켈미 추기경님 역시 알라마노의 친한 친구이셨습니다. 그분은 우리 수도회를 창설하도록 알라마노 신부님을 설득하셨습니다. 그후 11월 3일, 꼰솔라따의 15분의 수녀님들이 케냐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아시아로

우리의 첫 선교사들은 1913년 11월 28일, 케냐의 중부 도시, 리부루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코톨렝고 수녀님들의 환영을 받았으며, 코톨렝고 수녀님들은 차츰 이 수녀님들이 선교 생활을 시작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셨습니다. 1914년 2월 9일, 우리 수녀님들은 12일 간을 걸어서 니에리에 도착했는데, 이곳은 우리 수도회의 첫 번째 선교지가 되었습니다. 황소들이 끄는 마차들이 여행을 위한 필수품들과 밤의 휴식을 위한 텐트, 그리고 각자의 짐을 날랐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신부님들은 수녀님들의 도착을 기쁨으로 환영했고, 그들과 함께 케냐 백성들에게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복음과 위로를 전해 주었습니다.

케냐로 진출한 후 우리 수녀님들은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선교활동을 했으며, 그 다음에는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을 지나 드디어 아시아 대륙으로 진출했습니다. 여기 수녀님들이 활동하고 있는 나라와 그 도착일자를 적어보겠습니다. 탄자니아(1923년 1월 13일), 에티오피아(1924년 11월 22일), 소말리아(1925년 1월 4일), 모잠비크(1928년 9월 18일), 브라질(1946년 6월 26일, 이는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첫 번째 진출이었습니다), 스위스(1946년 8월 1일), 콜롬비아(1950년 1월 19일), 영국(1947년 12월 17일), 미국(1954년 2월 2일), 라이베리아(1963년 2월 27일), 포르투갈(1964년 3월 11일), 스페인(1974년 11월 27일), 리비아(1975년 10월 9일), 베네수엘라(1982년 2월 1일), 볼리비아(1991년 3월 23일), 기네아 비소(1992년 2월 28일), 몽골(2003년 7월 27일), 그리고 지부티(2007년 9월 17일)입니다.

한 분의 창설자, 구별된 두 수도회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와 꼰솔라따 선교 수녀회는 모두 복자 알라마노 신부님에 의해 창설됐습니다. 복자 알라마노 신부님은 여러 해 동안 이 두 수도회의 총장 신부님이셨습니다. 그후 우리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의 필립보 페를로 주교님께서 알라마노의 첫 후계자가 되어 이 두 수도회를 이끄시게 되었습니다. 여러 환경으로 인해 이 두 수도회는 법적 결별을 결정했으며, 1930년에서 1934년 사이에 나뉘고 말았습니다. 그 후 수녀님들은 특정한 회헌을 따라 그들 수녀회의 운영을 책임지게 됐습니다.이 결별이 가져다 준 가장 뚜렷한 결과 중 하나는 꼰솔라따 선교 수녀회가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가 없는 곳, 즉 볼리비아, 기네아 비소, 라이베리아 및 소말리아와 같은 나라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한편 수녀님들이 안 계시는 나라들도 있습니다. 한국(남한)과 폴란드 같은 나라들입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와 꼰솔라따 선교 수녀회의 총본부는 두 수도회 사이의 관계를 강화하기로 결정하게 됐습니다. 1990년 10월 7일, 창립자의 시복을 준비하는 일에 있어서도 그랬고, 몽골과 지부티 및 최근에는 멕시코에 양 수도회가 함께 진출했을 때(2007년)에도 그랬습니다. 또한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은 여러 나라에서 선교 사명의 활성화를 위해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독립적 활동 시기가 끝나고 우리의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와 수녀회는 다시 협력의 길을 걷기 시작해 알라마노 복자께서 우리 모두를 위해, 즉 그분의 아들딸들을 위해 원하셨던 애초의 가족의 정신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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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백성을 위해 봉사하다

우리는 무엇을 할까요? 우리는 선교 카리스마에 의해 지원을 받고 자극을 받아 거의 모든 일을 다 합니다. 모든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의 영광과 위로를 선포합니다. 우리는 소외된 사람, 횡포와 불의의 희생자, 그리고 여러 형태의 가난에 짓눌린 사람들 곁에 머뭅니다. 물론 모두에게 봉사하지만, 특히 여인들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 여인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진정 그들은 자기들이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은 사람들임을 스스로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여러 측면에서, 그리고 여러 종류의 그룹들에게 사목적 봉사를 제공합니다. 우리는 복음화와 동시에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봉사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우리는 여러 문화들과 대화를 하려 노력하며, 모든 문화 속으로 복음을 침투시켜 그 문화들을 쇄신하려 합니다. 우리는 또한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들과도 함께 일하는데 이들은 매우 가난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유감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 그들의 문화와 고유한 신분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며 후손들에게 전달해 주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이 그들의 언어와 세상 및 하느님에 대한 그들의 견해, 그들의 교훈과 지혜를 보존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그들은 불의에 희생되는 수가 많고, 자주 그들의 본거지에서 추방되곤 합니다. 우리는 또한 특히 브라질, 볼리비아와 미국에 있는 아프리카계 아메리카인들(남북 아메리카로 잡혀온 아프리카 노예들의 후손들) 사이에서도 일합니다. 그들은 아직도 여러 나라에 만연돼 있는 인종차별과 민족주의의 희생자들이며, 많은 경우 사회로부터 소외됩니다. 우리는 아프리카계 아메리카인들의 선익을 위한 활동을 강화하려 노력합니다. 그들이 그들의 가치를 생생히 유지하고 권리를 존중 받기 위한 투쟁에서 만나는 난관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우리는 힘쓰고 있습니다. 브라질, 포르투갈, 콜롬비아, 케냐 등과 같은 몇몇 나라에서는 대도시 변두리에 있는 빈민촌에서 그들과 함께 생활합니다.그들이 존엄성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돕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또한 육신적으로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합니다. 병원과 보건소, 특히 에이즈 환자들을 위해 일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용기와 끈기, 그리고 인내로써 건설할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여러 곳에서 우리는 교육계에서, 특히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을 위해 일합니다. 오늘 날 상황의 변화는 새로운 세대를 양성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들이 그리스도교적 및 인간적 양심을 지닐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함께 일하는 구체적인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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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의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와 꼰솔라따 선교 수녀회는 여러 해전부터 많은 나라에서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몽골, 지부티 및 멕시코와 같은 나라에서는 양 수도회가 함께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은 2003년 7월 27일 몽골에 도착했습니다. 이때 꼰솔라따 선교 수녀회가 처음으로 아시아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3년간은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에 머물면서 언어를 공부하고 이 나라 사람들의 문화와 종교와 가치관을 익힌 후 세 분의수녀님들과 한 분의 신부님이 2006년 9월 19일에 아르바이헤르로 출발했습니다. 이 도시에는 약 20,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수도의 남쪽 400㎞ 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의 목표는 종교간 대화, 문화와의 대화와 복음화,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이미 교리 교육을 시작했으며, 주민들은 우리의 선교사들의 노력과 특히 그들 사이에 이루는 일치와 가족정신을 높이 평가합니다. 사실 우리의 선교사들과 주민들은 하루의 많은 순간들을 함께 하며, 특히 기도와 식사를 함께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작은 그룹으로 나뉘어 작업을 하는데, 프로그램은 항상 모두 함께 짭니다. 우리의 ‘아버지’ 알라마노께서는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와 꼰솔라따 선교 수녀회가 하느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충실히 실행하고 있음을 보시면서 만족하시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물론 우리는 여러 측면에서 아직도 더 나아져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꼰솔라따 선교 수녀회의 100주년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우리 ‘아버지’ 알라마노를 우리에게 선물하신 하느님께 온 마음 다해 감사드립니다. 그분은 우리의 ‘어머니 꼰솔라따 성모님’의 영감을 받고 인도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인류를 위해 일생을 바치신 많은 수녀님들의 일생에도 감사드립니다. 또한 전 세계에서 우리 복자 요셉 알라마노의 카리스마와 영감에 따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계속 선포하고 계시는 모든 남녀 선교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리기에 앞서 우리의 친구들이며 회원들인 한국의 여러분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의 나라에서 일하고 계시는 우리의 신부님들을 여러분이 사랑하고 계심을 저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몽골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의 신부님들과 수녀님들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의 친구들이며 꼰솔라따 선교 수도회와 꼰솔라따 선교 수녀회의 복음화 사업의 협력자들이십니다. 우리의 ‘어머니 꼰솔라따 성모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이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을 항상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복자 요셉 알라마노의 꿈은
전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 꼰솔라따 수녀님들의 노력과,
헌신, 봉사, 사랑을 통해서
계속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행복한 100주년 기념일을
맞이하길 바랍니다.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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