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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교 체 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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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수녀 세 분의 경험을 살펴보기 위해 국민의 대부분이 무슬림인 아프리카 북부의 나라 알제리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그들은 사회사업이나 프로젝트 등 직접적인 복음화 활동을 하지 않고, 무슬림 가운데에서 조용히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집앞에 앉아 있던 노인 한 사람이 길을 가던 로산나 수녀님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을 존중해줍니까?”그러자 수녀님이 대답합니다. “그럼요.”노인은 알제리의 넓은 오아시스 마을‘아인 세프라’에 사는 다른 사람들처럼, 로산나 수녀님이 다른 두 수녀님과 함께 그곳에 사는 유일한 외국인이라는 것을 압니다. 로산나 수녀님은 이탈리아 인이고 다른 두 분은 폴란드와 일본 수녀님입니다. 세분의 수녀님은 이곳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결혼도 하지 않고 자녀도 없이 사는 여자들’인데다 무엇보다도‘믿지 않는 사람’곧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입니다. 이 지역은 모래 언덕과 소금산들에 가로막힌 곳이고 무엇보다도 문화적으로 고립된, 매우 전통적인 무슬림 지역입니다.

수녀님 세 분을 제외하고는 이곳에 사는 모든 사람은 무슬림입니다. 이들은 알제리에 다섯 개의 공동체를 가지고 있는 마리아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소속인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지역 주민들과 직접 부딪히며 단순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29.jpg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아인 세프라’에서도 이들이 크게 환영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곳에 막 도착했을 때에는 두 명의 아이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쏜살같이 지나가면서 대문을 향해 돌을 던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산나 수녀님은 그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후로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어요. 이곳 사람들은 조용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우리를 사랑합니다. 때로는 우리를 축제나 결혼잔치에 초대하곤 해요. 관리들이 서양 사람들을 거부하는 선전을 하기도 하고, 외국인에 대항하도록 부추기기도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을 통해 그들은 국민들,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미래에 대해 구체적인 희망을 갖지 못하도록 최악의 봉사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로산나 수녀님은 이미 30년째 봉사하고 있는 알제리에 대해 잘 아는데 석유와 천연 가스로 아주 부유하게 살 수도 있는 이곳 사람들은 실제로는 단순하고 매우 가난하게 살아갑니다. 수녀님들이 하는 일은 특별히 여성들을 위한 봉사인데, 끈기 있고 용감한 이곳 여성들은 공적인 삶에서 배제되어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가정과 사회에서 누구보다도 견고한 기둥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에게는 집과 주변으로 한정된 매우 엄격한 전통 사회에서 가정과 남편과 많은 수의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맡겨져 있습니다. 여성들은 여러 가지 작은 일들을 통해 많은 경우 실직자인 남편들이 받아오는 작은 봉급 때문에 매우 열악한 가정경제를 돕습니다.

여권 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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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산나 수녀님과 알제리 한 할아버지와 손녀

프란치스코회 수녀님들은 ‘케카르’에 ‘에살렘’(평화)이라고 부르는 여성들을 위한 작은 센터를 열었는데, 이곳에서는 여자들이 읽기, 쓰기와 재단, 재봉, 수예 등 약간의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배우는 직업교육을 받습니다. 로산나 수녀님의 말입니다. “제가 알제리 동부의 케카르에 도착했을 때, 여권신장이라는 말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이 수녀님들은 복음화 활동이나 계몽 사업이나 심지어 사회사업조차 하지 않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선교사들이 하는 전형적인 어떤 일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곳에 존재하는 것으로, 무슬림뿐인 그곳에 유일하고 작은 그리스도 공동체의 현존을 유지하며, 기도가 중심이 된 삶을 살면서 무슬림 형제자매들과의 만남을 유지하는 데에 의미를 둡니다. 문자 그대로 침묵과 형제애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로산나 수녀님의 침묵에는 한계가 있는데, 기도를 제외하면 수녀님은 강하고 분명하게 웅변을 토합니다. 정의롭지 않은 상황이나 권력남용, 학대를 당하는 상황들을 분연히 마음에 담고,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고안해냅니다.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불의와 사람들을 통제하고 조작하려는 잘못에 대항해 싸웁니다. 그리고 치료를 하기 위한 어떤 가능성도 없는‘아인 세프라’의 장애아를 위해 정성을 다합니다.

단순하고 직접적인 방식을 통해 수녀님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정복하고, 선입견과 무지를 포함한 많은 장벽을 무너뜨립니다. 1996년 트라피스트회의 일곱 수사님들이 납치되어 살해된 ‘티비리네’와 같은 어려운 곳에서도 수녀님은 결실을 거두었습니다. 2년 동안 벨기에 수녀님을 도와 무슬림 소녀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수도원에 오는 여자들은 완전히 얼굴을 가려야하지만 평온함과 아늑함이 보장되는 작은 오아시스인 수도원 안에서는 세련되게 수를 놓은 아름다운 흰 옷들을 생산합니다.

‘사이다’의 이야기

31.jpg 로산나 수녀님은 특별한 감상에 젖어 ‘케카’에서 일하는 동안 알게 된‘사이다’와 있었던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

“사이다는 열 살이었는데 아홉 형제 중 첫째 딸이었습니다. 학교에 다니지 않았고 아버지의 양떼를 돌보는 일을 했어요. 그런데 가끔 양 떼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우리 수도원으로 오곤 했어요.”

로산나 수녀님은 즉시 그 아이가 아주 영리한 아이라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실제로 ‘사이다’는 오래지 않아 읽기와 쓰기, 그리고 수예를 배웠습니다. 2년 뒤 정부에서 인정하는 자격증을 받게 됐습니다. 아버지가 가족을 버렸고, 어머니는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이다는 수녀님들의 도움을 받아, 시내에서 상급 과정을 다니며 일을 해야 했습니다. 지금은 이 지역에서 가장 좋은 직업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녀는 사랑하는 젊은이와 결혼을 해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현재의 그녀의 모습을 보면 누구도 그녀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양치기였다고 상상을 할 수 없습니다. 로산나 수녀님은 지나간 사진첩을 넘기며, 알제리의 여성들을 위해 그리고 그들과 함께 겪은 수많은 추억들을 들려주었습니다. 모두 다 단순한 일상들이었지만 그것은 일상적이고 핵심적인 행동들을 통해 우정과 격려와 도움의 형태로 이슬람과의 대화가 실현되는 좋은 예입니다. 문화와 종교 간의 차이를 자연스럽게 극복하는 방법은 바로 이처럼 단순한 모습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로산나 수녀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요.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현존 자체를 선교로 이해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곳에서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발견해낼 수 있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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