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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하고 온순하신 우리의 어머 니. 이것은 복자 알라마노께서 좋아하던 꼰솔라따 성모님의 호칭이 자 제가 꼰솔라따의 영성에 관한 묵상 을
끝맺으면서 말씀드리고 싶은 주제 입니다. 12월에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 념하는데, 이 시기는 우리의 신앙에 있어 매우 의미 있고 마음 설레는 때 입니다. 어릴 적부터 저는 구유 곁에 서 계신 마리아의 자태를 보면서 감동 을 받곤 했습니다. 연약한 자신의 아 들을 향해 아무런 꾸밈없이 사랑 가득 한 모습으로 서있는 모습, 어떤 특별 한 것 없이도 자신의 아드님에게 필요 한 사랑과 포용을 주는 진정한 어머니 의 모습을 묵상하면서 저는 언제나 큰 기쁨을 맛보고는 했습니다. 이러한 태 도는 어머니와 아기의 관계에서 우리 가 관상할 수 있는 꼰솔라따 성모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많은 경우, 저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 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곤 하는데 어 머니이신 마리아께서 우리에게 가르 침을 줍니다. 우리의 사랑은 우리가 주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우리 자신을 내어주는 가에 따라 좌우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얼마나 받아들이고, 얼마나 우리 자신 의 일부로 그들을 품안에 간직하는가 에 따라 우리 마음속에 지닌 사랑이 드러납니다. 순박하신 우리의 어머니께서 그분 처럼 위로 자체가 되라고 우리를 초 대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내어놓을 때에 진정한 위로자가 됩니다. 마리 아는 예수님에게 물질적인 것을 풍성하게 주시지 않았습니다. 구유에서 우리가 관상하는 가난과 나사렛의 감 추어진 삶은 그분의 마음이 지닌 풍 요로움과 사랑 가득한 현실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복자 알라바노와 그분을 따른 선교 사들은 이런 온순함의 영성을 육화하 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꼰솔라따의 모든 선교사들은 바로 이러한 태도를 취하도록 부름을 받았으며, 마리아처 럼 온순함을 전하는 얼굴로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초대받 았습니다. 당연히 우리에게는 누구든 경직된 얼굴과 어둡고 고통 스런 모습을 지니게 하는 여 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예 수님의 어머니에게도 마찬가 지였습니다. 천사가 알려준 소식을 받아들여야했을 때, 예수님의 어린 시절과 공생 활이 시작되었을 때, 무엇보 다도 그토록 사랑하는 아들 의 십자가와 무덤 앞에서 그 랬습니다. 이러한 고통과 시 련의 순간들이 그분의 얼굴 에, 어떤 상황이나 어떤 사람 도 무너뜨릴 수 없는 깊은 평 온이 깃들게 했습니다. 비록 우리의 차원과 원의와는 다를지라도 하느님께서 사랑이신 당신의 뜻을 이 루시리라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저는 꼰솔라따 성모님의 모 습을 관상하는 복자 알라마노의 마음 을 여러분 마음속에 지니도록 초대합 니다. 굳은 마음과 기쁨의 정신, 무엇 보다도 우리의 여정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온순한 태도를 지니 도록 초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