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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소식
2013.10.25 21:51

프란치스코 교황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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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인간 그리고 그들의 아픔들에 관한

프란치스코 교황 인터뷰

- 예수회 발간 가톨릭 문명(Civiltà Cattolica)지 스파다로(Antonio Spadaro) 신부

 

spadaro[1].jpg

 

(산타 마르타, 2013819일 월요일 오전 950)

 

819일은 월요일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게 오전 10시에 산타 마르타로 오라고 약속을 잡아 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선친으로부터 받은 교육에 따라 언제나 약속시간 전에 도착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직원들은 저를 작은 방으로 안내해 주었습니다.

잠깐, 아주 잠깐, 2분가량을 기다리니 직원이 와서 승강기까지 동행해 주었습니다. 2분 동안 저는 리스본에서 있었던 예수회 발간 몇 개 잡지사 대표자 회의에 갔던 생각을 했습니다. 교황께 공식적으로 인터뷰를 요청하자는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저는 대표들과 논의하여, 공동의 관심사가 될 만한 몇 가지 예상 질문을 언급했습니다. 승강기에서 내리니 교황께서 문 앞에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문턱을 넘지 않아도 되는 것 같은 편안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분의 방으로 안내되어 들어갔고, 교황은 제게 소파를 권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허리에 문제가 있다며 높고 딱딱한 의자에 앉았습니다. 방은 단순하고 소박했습니다. 집무를 보는 책상은 작았습니다. 꼭 필요한 것은 가구만이 아니라, 물건이라는 것에 놀랐습니다. 몇 개 안 되는 책과 종이, 그리고 몇 가지 물건이 전부였습니다. 이것들 가운데 성 프란치스코의 이콘이 하나가 있었고, 아르헨티나의 주보 루얀(Luján) 성모상, 십자고상, 그리고 예전에 성 미구엘 대신학교 기숙사 총장 신부님의 방에서 보았던 것과 매우 흡사한 잠자는 성 요셉상이 있었습니다. 베르골료의 영성은 그가 원한 것처럼 조화로운 에너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성 프란치스코, 성 요셉과 마리아의 인간적인 모습으로 이루어졌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교황은 저를 웃으며 맞이해 주었습니다. 여러 차례 세계를 다녔고 개방된 마음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최근의 브라질 여행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교황은 브라질 방문을 큰 은총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저는 돌아와서 좀 쉬었는지 물었고, 그분은 그렇다고 하시며 컨디션이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세계청년대회는 신비라고 했습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 앞에서 처음으로 말을 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한 사람 한 사람씩 살펴보았고, 제가 누구 앞에 있는지를 파악한 다음에 사적인 관계로 들어갑니다. 저는 대중 앞에 서는 것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저는 실제로도 그렇게 보인다고 했고, 그것이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교황께서 대중 사이에 있어도 눈은 언제나 개인에게 머물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사이에 방송 카메라들은 이미지들을 조명하고 대중은 그것을 본다고 했습니다. 저는 교황이 적어도 눈길만으로도 마주하고 있는 사람과 직접적이고 자유로운 관계 속에 머문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점에 대해 만족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 그럴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코파카바나의 해변에서처럼 수백만의 군중 앞이라고 하더라도 소통은 원래 자신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대해서 만족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녹음기를 켜기까지 우리는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 책을 언급하시면서 좋아하는 두 명의 현대 프랑스 사상가 앙리 드 루박(Henri de Lubac)과 미셀 드 세르토(Michel de Certeau)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사상가들의 개인사에 대해서도 몇 가지 말씀드렸습니다. 교황은 그 점에 공감하며, 자신의 교황직 선출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313일 점심시간에 선출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을 때, 완전한 어둠, 모든 것이 깊은 장막에 가려진 동시에 심오한 설명할 수 없는 내적인 평화와 위로가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런 느낌이 선출의 순간까지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친근한 분위기 속에서 더 많은 시간을 이야기를 나눈 후, 저는 메모해 온 몇 가지 질문지를 꺼냈고 녹음기를 켰습니다. 그리고 먼저 교황께 이 인터뷰를 싣게 될 예수회 잡지사 대표자들을 대표하여 감사를 드렸습니다.

지난 614, «가톨릭 문명»(Civiltà Cattolica)의 예수회원들과 가진 알현식 직전에 교황은 제게 인터뷰 허락에 대한 어려움을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교황은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어떤 대답을 하기보다는 생각할 거리를 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올바른 대답은 대부분 첫 번째 대답을 한 후에야 떠오르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이 제게 물었던 질문들에 대답을 했지만 저는 제 자신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인터뷰는 교황께서 질문에 대답하는 도중에 언제든지 자유롭게 멈출 수도 있고, 앞에서 한 대답에 보충 설명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사실 프란치스코 교황과 말을 한다는 것은 서로 연관된 많은 생각들을 끊임없이 끄집어내는 기회입니다. 메모를 한다는 것이 오히려 좋은 대화를 방해하는 것 같아 달갑지 않을 정도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의보다는 대화에 더 능숙한 것이 분명합니다.

 

베르골료(Jorge Mario Bergoglio)는 누구입니까?

질문은 준비가 되었지만, 그것보다는 살짝 다른 질문을 해 보기로 했습니다. “베르골료는 누구입니까?” 교황은 잠시 침묵하셨습니다. 저는 질문이 결례가 되었는지를 물었고 그분은 질문에 조심스럽게 답을 해 주셨습니다. “가장 적합한 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죄인입니다. 이것이 가장 적절한 대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하기 좋은 말이 아니라, 정말로 저는 죄인입니다.”

교황께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많은 것을 성찰하려는 듯 여러 차례 되뇌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저도 약간 약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아는 거지요. 하지만 순수한 부분도 분명 있습니다. 그렇기에 가장 적절하고 솔직한 표현은 이것입니다. ‘저는 죄인이고 그래서 하느님께서 저를 살피셨습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복하여 저는 주님께서 돌보아주신 사람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저의 모토인 가엾이 여기시어 선택하셨다는 말은 정말 저를 두고 한 말이라는 것을 항상 느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토는 성 베다의 <공경할 만한>(il Venerabile)이라는 강론에서 마태오 복음의 일화를 통해 알려진 바, “예수께서는 한 세리를 보시고 측은한 마음이 일어 그를 선택하시며 이르셨다: 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덧붙여 라틴어 가엾이 여기시어’(miserando)라는 동명사는 이탈리아어나 스페인어로 번역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존재하지 않는 동명사를 쓰고 싶습니다. ‘자비로운 마음이 일어’(misericordiando)라고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계속해서 자신의 생각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로마를 모릅니다. 몇 가지만 알 뿐입니다. 그 중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 있습니다. 제가 항상 다녔던 곳입니다.” 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우리도 이미 파악했습니다. 교황 성하!” 이어서 교황은 그래서 저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과 성 베드로 대성당은 압니다만 ..... 로마에 오면 언제나 스크로파 가()에서만 살았습니다. 거기에서 저는 <프랑스인들의 성 루이지 성당>을 자주 찾았고, 거기에서 카라바조의 작품 <성 마태오를 부르심>을 묵상하곤 했습니다.” 그제야 저는 교황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려는지를 깨달았습니다.

마태오를 향해 이렇게 ....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제스처를 하시며) 하시는 예수님의 손가락이 있습니다. (가리키는 그것이) 바로 저입니다. 마태오처럼 말입니다.” 여기에서 교황은 그림 속 주인공에 자신을 비추어 보고 있었습니다. “마태오의 몸짓에 놀랐습니다. 돈을 움켜쥐고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 아니오! 이 돈은 제 것입니다!’ 바로 제가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눈길을 돌리신 한 죄인입니다.’ 이것이 교황직 선출을 수용할 것인지를 물었을 때 제가 한 대답입니다.” 그래서 저는 되뇝니다. “Peccator sum, sed super misericordia et infinita patientia Domini nostri Jesu Christi confisus et in spiritu penitentiae accepto”.

 

왜 예수회원이 되셨습니까?

제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이해하는 것이 그분께는 일종의 정체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더 이상 보탤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준비한 첫 번째 질문으로 바로 들어갔습니다. “교황 성하,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예수회에 들어가도록 했습니까? 예수회의 어떤 부분이 당신을 끌어당겼습니까?”

저는 무언가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저는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도미니코 회원들을 좋아했고 많은 도미니코 수도회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결국 예수회를 선택했습니다. 신학교가 예수회 재단이었기 때문에 예수회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회에서 저는 세 가지 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선교정신, 공동체성, 그리고 교육입니다. 교육을 받지 않은 채 태어난 제게 이것은 커다란 매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회의 교육이란 시간을 정렬하는 방식이었고, 그것은 또 다른 놀라움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제게 중요한 것은 공동체입니다. 저는 항상 공동체를 찾았습니다. 혼자 사는 사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공동체를 필요로 했습니다. 여기 산타 마르타에서도, 교황으로 선출되었을 때 207호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손님방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교황으로 선출된 후, 교황 아파트로 가는 것에 대해 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No’라고 대답하고 201호실로 옮겼습니다. 사도궁 안에 있는 교황 아파트는 그리 화려하지 않습니다. 오래되었고, 사용하기 좋게 크기는 하지만 화려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깔때기를 거꾸로 세운 것처럼 크고 넓지만 입구는 매우 좁습니다. 한 방울씩 수를 세면서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람들 없이 저는 살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황께서 선교와 공동체에 대해 말을 하는 동안 저는 선교를 위한 공동체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예수회의 모든 문헌이 떠올랐고, 교황의 말씀을 통해 그것을 재발견하고 있었습니다.

 

예수회원이 교황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같은 맥락에서, 저는 교황께 예수회원 출신으로 첫 번째 로마의 주교로 선출된 것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이냐시오 영성에 따라 부르심 받은 사람으로서 보편교회에 어떻게 봉사할 계획입니까? 예수회원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냐시오 영성의 어떤 부분이 당신의 직무를 더 잘 수행하도록 도와줍니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시 식별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식별은 이냐시오 성인이 내적으로 가장 많이 고민했던 부분입니다. 그에게 있어 식별은 주님을 더 잘 알기 위한 투쟁의 수단이고, 그분을 더욱 가까이에서 따르기 위한 방식이었습니다. 저를 항상 놀라게 한 것은 이냐시오의 비전에 따라 쓰인 문구입니다. Non coerceri a maximo, sed contineri a minimo divinum est. 제가 장상이 되어 수도회를 통솔하면서 이 문장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높은 자리를 찾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하느님이 계시는 낮은 자리에 머무를 줄 아는 사람이 되어라.’ 이렇게 작고 큰 덕목이 위대합니다. 우리가 있는 자리는 언제나 지평을 바라보도록 합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향해 크고 열린 마음으로 매일 작은 일들을 하게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라는 커다란 지평 안에서 작은 것들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식별을 통해 자신의 올바른 위치를 인식하고, 자신의 관점에서 출발하여 하느님의 일을 들을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장소와 시간과 사람의 상황에 맞게 끊임없이 육화하는 것입니다. 이런 통솔 자세는 요한 23세 교황의 Omnia videre, multa dissimulare, pauca corrigere 라는 문구에서 다시금 드러납니다. 최고의 차원에서 모든 것을 보면서 최소의 차원에서 몇 가지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작은 몇 가지 일부터 실행하는 것입니다. 또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강력한 효과를 얻기 위해 약한 수단들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별은 시간을 요합니다. 많은 사람이, 예컨대 변화와 쇄신이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근본적으로 참되고 효과적인 변화는 언제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간이 바로 식별의 시간입니다. 때로는 식별이란 나중에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즉시 하는 것이라고 자극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은 최근에 제게도 일어났습니다. 식별은 언제나 주님의 현존 안에서 징표들을 바라보고, 일어난 것들에 귀 기울이며, 대중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가운데 일어납니다. 일상생활과 연관된 저의 선택들은 낡은 자동차를 사용하는 것처럼 편안하게 사물과 사람과 시대의 징표를 읽어 그에 응답하는 것으로, 그것이야말로 영적 식별입니다. 주님 안에서의 식별은 저의 통솔 방식을 형성합니다.” “그렇기에 즉흥적인 방식에 의한 결정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항상 첫 번째 결정은 신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으로 결정을 내려야 할지에 대해 고민합니다. 그것은 대개 실수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기다렸다가 내적인 평가를 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갖습니다. 식별의 지혜는 삶에 대한 불분명한 요구를 해결하고 가장 효과적인 수단들을 찾게 합니다. 위대하다거나 강하다고 생각되는 것과 언제나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회

그러므로 식별은 교황의 영성에 있어 하나의 기둥이 됩니다. 이것을 통해 그의 예수회원으로서 정체성이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됩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예수회가 오늘의 교회에 봉사하기 위해 당신만의 방식이 있는지, 직면하는 돌발적인 위험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요?”

예수회는 원래 항상 긴장상태에 있는 단체입니다. 예수회원은 중심이 없습니다. 예수회는 그 자체가 분산되어 있습니다. 그의 중심에는 그리스도와 교회가 있을 뿐입니다. 예수회가 자신의 중심에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면, 주변에서 살기 위한 두 가지 근본적인 조화의 기준점을 갖추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만 너무 바라보게 되면 견고한 건물처럼, 무장한자신을 중심에 두기에 안전하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위험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예수회는 언제나 하느님을 최고 자리에 두고, 그분의 최고 영광을 찾으며, 교회를 우리 주 그리스도의 진정한 신부로 보고,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로잡으시기에 비록 부족하고 나약해도 우리의 모든 인격과 고단함을 드립니다. 이런 노력이 끊임없이 우리를 자신에게서 벗어나게 합니다. 예수회를 정말로 강하게 만드는 수단은 부성적이고 형제애적인 인식을 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것이 사명으로 이어지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교황은 예수회의 회헌에서 예수회원은 자신의 양심을 드러내야 한다.’는 부분을 구체적으로 인용했습니다. ,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내적인 상황을 장상은 잘 인식하고 있어야 하며, 사명에 맞게 사람을 파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교황은 그러나 수도회에 대해 말을 한다는 건 어렵습니다. 너무 명확하게 하려고 하다보면 그에 따른 위험도 따릅니다. 수도회는 있을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습니다. 오로지 말을 하는 가운데 식별할 수 있습니다. 철학적 혹은 신학적인 명료함이 아닙니다. 그것들에 대해서는 논의할 수 있습니다. 수도회의 양식은 논의할 것이 아니라 식별하는 것입니다. 과정 안에서 논의를 제안할 수는 있습니다. 신비적인 아우라는 예수회원들에게는 결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들의 생각이 완전하지도 않습니다. 예수회원은 미완의 사유에 의해, 개방된 생각을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수회 역사에서도 닫히고, 엄격하고, 신비보다는 교육적-금욕적인 생각으로 살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런 변형이 Epitome Instituti를 나았습니다.” 여기에서 교황은 예수회 안에서 사용하고 있고 20세기에 다시 마련하여 회헌을 대체하여 살도록 한 실천적인 어떤 것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예수회에 관한 회원들의 양성은 일정기간 이 텍스트로 이루어졌고, 그래서 일부 회원들은 설립 텍스트였던 회헌은 전혀 읽어본 적이 없기도 합니다. 교황은 예수회 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동안 규범들이 정신을 압도하는 위험이 초래되고, 카리스마를 너무 내세우고 강조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계속해서, “그렇습니다. 예수회원은 항상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자신이 가야할 지평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여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예수회의 힘입니다. 이것이 예수회로 하여금 계속해서 연구하고 창의력을 키우고 관대해 지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은 그 어느 때 보다도 행동하는 가운데 관상적이어야 하고, ‘하느님 백성으로서, ‘교계의 거룩한 어머니 교회로서 온 교회에 더욱 깊이 다가가야 합니다. 여기에는 많은 겸손, 희생, 용기가 필요합니다. 특별히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거나 오해와 중상의 대상이 될 때, 가장 생산적인 태도가 요구됩니다. 과거 중국에서의 전례와 말라바르 전례, 파라과이에서의 레두시온과 같은 긴장된 상황들을 생각해 봅시다.” “저는 예수회가 최근에 경험한 몰이해와 문제들의 증인입니다. 이 중에는 힘든 시절이 있었고, 모든 예수회원들에게 교황께 순명하라는 네 번째 서원을 확대하는 문제가 다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아루페 신부님 시절이 가장 안정된 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분이 많은 시간을 기도에 매진하던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루페 신부님은 일본 사람들처럼 바닥에 앉아서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덕분에 그는 바른 행동을 했고 바른 결정들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모델: 피에트로 파브레(Pietro Favre) «개혁자 사제»

여기에서 저는 예수회의 창설에서부터 지금까지 특별히 교황께 감명을 준 예수회원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예수회원 중 어떤 분이 있으며, 있으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교황은 이냐시오와 프란치스코 사베리오부터 시작하여 제가 알고 있는 예수회원들을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사보이 지방 출신의 복자 피에트로 파브레(1506-1546)를 언급했습니다. 그는 이냐시오 성인의 첫 번째 동료 중 한 사람으로, 소르본드의 학창시설에 이냐시오 성인과 같은 방을 쓴 룸메이트입니다. 187295일 비오 9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현재 시성 절차 중에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관구장이었던 시절에 피오리토(Miguel A. Fiorito)와 아마데오(Jaime H. Amadeo), 두 예수회 전문가들이 감수한 파브레의 저서 기억(Memoriale)을 인용했습니다. 교황께서는 특별히 드 세르토(Michel de Certeau)의 감수본을 좋아했습니다.

저는 왜 파브레를 좋아하며 그의 어떤 면이 교황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과 대화할 줄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멀리 떨어져 반대하는 사람들과도 대화했습니다. 소박한 측은지심, 순수함, 항상 준비된 자세, 내적인 식별에 귀 기울임, 위대한 사람으로 존재함, 강한 결단력과 부드럽고 다정한 태도... 등을 겸비한 사람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파브레라는 인물의 성격을 묘사하는 동안 저는 그가 얼마나 교황에게 삶의 모델이 되고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드 세르토는 파브레를 단연 개혁자 사제라고 정의했습니다. 내적인 체험, 교의적인 표현과 구조적인 개혁은 그와 결코 분리할 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런 형태의 개혁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교황은 이런 것을 설립자의 진정한 모습으로 성찰하고 있었습니다. “‘이냐시오는 신비가였지, 금욕주의자는 아니다.’며 침묵으로 일관된 영신수련만이 이냐시오의 것이라는 말을 들으면 저는 화가 납니다. 사실 수련은 실생활에서 침묵 없이도 완벽한 이냐시오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금욕주의, 침묵, 참회를 강조하는 것은 예수회 안에서, 특히 스페인 공동체에서 확산된 변형된 형태입니다. 그러나 저는 랄망(Louis Lallemant)와 수린(Jean-Joseph Surin)이 주창한 신비적인 경향에 더 가깝습니다. 파브레도 신비가였습니다.”

 

통솔 경험

어떤 형태의 통솔 경험이 베르골료 신부로 하여금 양성을 성숙하게 할 수 있었습니까? 그리고 장상으로서 나중에는 예수회의 관구장으로서 어떻게 영향을 미쳤습니까?

예수회의 통솔 양식은 장상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지만, ‘참사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황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과거 통솔 경험이 현재 보편교회의 통솔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잠시 진지하게 생각한 다음 차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회 안에서 제 장상의 경험이란, 솔직히 말해서, 한 번도 장상으로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문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회원으로서 제가 통솔하던 초기에는 많은 결함이 발생했습니다. 그때가 예수회로서도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한 세대의 예수회원들이 송두리째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저도 매우 젊은 나이에 관구장이 되었습니다. 어처구니없게도 서른여섯 살이었습니다. 힘든 상황들에 직면해야 했고, 저는 거칠고 개인적인 방식으로 결정을 내리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제가 누군가에게 어떤 것을 맡길 때는 그 사람을 온전히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실수일 수도 있습니다. 그 책임이 고스란히 제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 사람들이 그런 자립주의에 싫증을 냈습니다. 저의 자립적인 방식과 성급한 결정은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고, 저를 극보수주의자로 낙인찍게 만들었습니다. 코르도바에 있을 때, 저는 심각한 내적 위기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복자 이멜다처럼 살지 않았지만 한 번도 우파가 되어본 적이 없습니다. 저의 자립적인 방식과 결정 방법이 문제들을 야기한 것입니다. 이것들은 인생 경험으로 드리는 말씀이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려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저는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주님께서는 저의 부족함과 죄를 통해서도 이렇게 통솔하는 교육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주교 시절, 15일에 한 번씩 6명의 보좌주교들과 모임을 가졌고, 연중 여러 차례 사제 자문단과 만났습니다. 그들은 문제들을 제시했고 논의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제게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제게 말합니다. ‘너무 많은 자문을 구하지 말고 결정하십시오.’ 하지만 저는 자문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추기경 회의나 시노드 같은 것들은 이런 자문 기능을 진정하고 역동적으로 만드는 중요한 장()입니다. 하지만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덜 엄격하게 할 필요는 있습니다. 진정한 자문을 원하지 형식적인 자문을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8명의 외부 자문단은 저 혼자만의 결정이 아니라 추기경들의 바람이었고, 콘클라베 전에 추기경단회의에서 나왔던 것입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실질적인 자문이지 형식적인 자문이 아닙니다.”

 

«교회와 함께 느끼다»

이제 교회에 관한 주제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이냐시오 성인이 영신수련(Esercizi Spirituali)에서 적은 교회와 함께 느끼다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의미하는 것은 정확하게 무엇입니까?

교황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한 가지 표현으로 말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교회의 이미지는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자주 사용하는 말이고, 교의헌장 인류의 빛12항에서도 언급한 말입니다. 백성이라는 이름은 강력한 신학적인 가치를 지닌 말입니다. 구세사에서 하느님은 한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백성이 아니고는 충만한 정체성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떨어진 개인 혼자서는 아무도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하지만, 하느님은 인류공동체 안에서 실현되는 상호 관계의 틀 속에서 백성을 끌어 댕깁니다. 하느님은 이런 역동적인 백성 안으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백성이 주체입니다. 교회는 기쁨과 고통 속에 역사를 걷는 하느님의 백성입니다. 그래서 제게 있어 교회와 함께 느낀다는 것은 이런 백성들 안에 머문다는 뜻입니다. 믿는 이들과 함께 믿음을 강화하고, 여정 중에 있는 모든 백성의 신앙의 초월적 의미를 통해 그들의 믿음의 무류성’(infallibilitas in credendo)을 드러냅니다. 바로 이것이 이냐시오 성인이 말했던 교회와 함께 느낀다는 것에 대해 현재 제가 지향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대중과 주교들 간 대화 시, 교황은 이 노선을 따르고, 이로써 믿음에 충실하고 성령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느낀다는 것은 신학자들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닙니다.” “마리아와 관련하여, 그가 누군지 알고 싶으면 신학자에게 물어보고, 어떻게 마리아처럼 사랑하는지를 알고 싶으면 백성에게 물어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백성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마니피캇(Magnificat)을 통해 읽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와 함께 느낀다는 것이 교계와 함께 느낀다는 의미와 연관된 것으로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황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다음, 오해를 피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명확히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무류성이 모든 신자들의 것이기도 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의회에 조명하여 포률리즘 형태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것은 모든 신자들의 무류성이 아닙니다. 여기에 대해서 주의해야 합니다. 공의회에 조명하는 것이 포퓰리즘 형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냐시오 성인이 말씀하신 목자와 백성이 함께하는 하느님 백성으로서 어머니이신 거룩한 교계 교회의 경험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온전히 하느님 백성의 것입니다.” “저는 하느님 백성 안에서 일상적인 거룩함, 곧 성화를 봅니다. 평균적인 거룩함이 있고 우리도 모두 그 중의 한 사람이고, 그것을 말레귀라고 합니다.” 교황께서는 1876년에 태어나 1940년에 사망한 프랑스인 작가 요셉 말레귀(Joseph Malègue)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그의 미완성 삼부작 Pierres noires: Les Classes moyennes du Salut를 말하고 계셨습니다. 일부 프랑스의 비평가들은 가톨릭 프로스트라고 정의하기도 했습니다. 계속해서 교황은 저는 인내하는 하느님의 백성 안에서 성화를 봅니다. 자녀들을 양육하는 여성, 빵 한 조각을 가정으로 가져오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남성, 병자들, 많은 상처를 입고도 하느님을 섬겼다는 것에 미소를 잃지 않는 노()사제, 많은 일을 하면서도 숨어서 성덕을 살고 있는 수녀들이 있습니다. 제게 이것은 공통된 거룩함입니다. 저는 종종 거룩함과 인내를 하나로 봅니다. 소망으로서(hypomonè) 인내만이 아니라, 삶의 사건과 상황에 대해 책임을 지고 매일 앞으로 계속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이냐시오 성인이 말한 전투교회(Iglesia militante)의 성화(거룩함)입니다. 이것은 우리 부모님들의 거룩함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제게 무척 잘해 주셨던 할머니 로사의 거룩함이었습니다. 제 소성무일도서에는 로사 할머니의 증언이 있어 저는 자주 그것을 읽곤 합니다. 제게는 기도와도 같습니다. 할머니는 죽을 만큼 많이 아팠고, 그런 가운데서도 계속해서 용감하게 앞으로 나가신 성녀였습니다.”

우리가 느껴야 하는교회는 모두의 집이지, 선택된 작은 한 집단만을 수용하는 작은 경당이 아닙니다. 우리는 보편교회의 의미를 우리의 평범한 삶의 둥지를 지키는 것으로 축소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어머니고, 생산적이어야 합니다. 제가 교회의 직무나 남녀 축성자들의 부정적인 행동을 보면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바로 미혼 남성혹은 미혼 여성이라는 말입니다. 그들이 아버지로, 혹은 어머니로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들은 생명을 전할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가령, 파타고니아로 갔던 살레시오 수도회 선교사들의 삶을 읽을 때면, 생명의 역사, 생산의 역사를 읽곤 합니다.” “최근의 다른 사례를 들면, 제게 편지를 보낸 한 청소년에게 제가 전화를 한 것에 대해 언론이 많은 보도를 했습니다. 제가 그 아이에게 전화를 한 것은 그의 편지가 매우 아름다웠고, 대단히 단순했기 때문입니다. 제게 이것은 생산적인 활동이었습니다.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아버지로서 그의 삶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해 주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는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런 생산적인 일은 제게도 좋습니다.”

 

젊은 교회와 오래된 교회

계속해서 교회에 관한 주제에 머무르며, 저는 교황께 최근의 세계청년대회에 관해 물었습니다. “이런 큰 행사는 젊은이들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고, ‘영적인 허파라고 할 수 있는 최근에 세워진 교회들에 관해서도 생각할 기회를 줍니다. 이런 교회들을 통한 보편교회의 희망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젊은 교회들은 신앙, 문화, 생명에 관한 핵심 요소들을 오래된 교회들에서 발전시켜온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발전시킵니다. 제게 있어 오래전에 세워진 교회와 최근에 세워진 교회 간 관계는 사회에서 젊은이들과 노인들 간의 관계와 비슷합니다. 함께 미래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한쪽의 힘과 다른 한쪽의 지혜가 어우러지는 것입니다. 당연히 많은 위험도 있습니다. 젊은 교회들은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느끼고, 오래된 교회들은 자신들의 문화적인 모델들을 젊은이들에게 강요합니다. 그러나 미래는 함께 건설하는 것입니다.”

 

교회? 영역들에서 하나의 병원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교황직 포기를 선언하면서 급속히 변화하는 오늘의 세계와 신앙생활에 대한 커다란 문제들에 직면하여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한계에 봉착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막 대답해 주신 것과 연관 지어 교황께 묻습니다. “이런 (급격히 변하는)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교회는 무엇을 가장 필요로 합니까? 개혁이 필요합니까? 앞으로 교회가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는 무슨 을 꿉니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하기 시작했습니다. “베네딕토 교황께서는 성화활동, 위대함과 겸손함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람이었습니다.”라며 전임교황에 대한 깊은 애정과 신뢰를 드러냈습니다. “제가 보기에 현재 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신자들의 상처를 돌보고 마음을 녹이는 능력,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의지입니다. 교회는 전쟁이 끝난 뒤 전장에 세운 병원과 같아야 합니다. 심하게 다친 사람에게 콜레스테롤이 높다거나 당뇨가 있는지를 묻는 것은 무익한 일입니다. 그의 상처를 치료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나머지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상처를 치료하는 것,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아래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교회는 때로 작은 것들, 작은 개념들에 자신을 가두곤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첫 선포입니다. ‘예수께서 당신을 구원하셨다!’는 것을 알려야 합니다. 교회의 직무들은 무엇보다도 자비의 직무여야 합니다. 예컨대 고해사제는 항상 너무 엄격하거나 너무 관대해질 위험이 있습니다. 둘 다 자비롭지 못합니다. 둘 다 진정으로 사람의 짐을 덜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엄격하기만 한 사제는 그렇게 해야 자기가 편하기 때문에 그렇게 합니다. 너무 관대한 사제는 이것은 죄가 아니다거나 그런 비슷한 말로 자신을 위로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과 동행해 주기를 바라고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주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백성을 어떻게 다루고 있습니까? 저는 어머니이신 교회, 목자이신 교회를 꿈꿉니다. 교회의 직무들은 자비로워야 하고,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이웃의 상처를 씻어주고 덜어주고 함께 짊어져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복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죄보다도 훨씬 더 위대하십니다.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개혁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즉 나중에 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개혁은 태도에 관한 것이어야 합니다. 복음의 직무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그들과 함께 밤길을 걸으며, 대화할 줄을 알고 그들이 처한 어둠 속으로 내려갈 줄을 알며, 자기를 잃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어둠 속에 함께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백성은 목자를 원하지 국가의 행정가나 학자를 원하지 않습니다. 특히 주교들은 한 사람도 도태되지 않도록 자기 백성 안에서 하느님의 걸음을 인내로 지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양떼들과 동행하며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한 직관력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오는 사람만) 수용하는 교회로서만이 아니라 문을 열고 나가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교회가 되어 자신으로부터 나가 다니지 않는 사람, 떠난 사람이나 무관심한 사람을 향해 나가야 합니다. 나간 사람 중에는 교회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담대함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교황께서 말씀하신 점을 인정하면서, 교회의 입장에서 정상적인 상황에서 살고 있지 않거나 복잡한 상황에 처한 그리스도인들, 곧 어떤 방식으로든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예컨대 이혼 후 재혼한 사람들, 동성 부부들과 다른 많은 힘든 상황 속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 봅니다. 이런 경우 어떤 선교사목을 실천해야 합니까? 어떤 자극이 요구됩니까? 교황이 무슨 의도에서 이런 말씀을 하고 그에 대해 대답을 주실지 궁금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길에서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하늘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우리의 설교를 통해서 모든 질병과 상처를 치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저는 사회적 상처를 입은 동성애자들의 편지를 받곤 했습니다. 그들은 교회가 항상 자신들을 단죄한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러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저는 말했습니다. 동성애자가 좋은 의향을 가지고 하느님을 찾는다면 저는 그것 때문에 그들을 판단하지는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가톨릭교회 교리서]에 나오는 것입니다. 종교가 대중에게 봉사함에 있어 자신의 입장에서 직접적으로 표현을 하지만 피조물 안에서 하느님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십니다. 개인의 삶 안에서 영적인 간섭은 불가능합니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화가 난 태도로 제게 동성애에 대해 물었습니다. 저는 다른 한 가지 질문을 하며 대답했습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하느님이 동성애자 한 사람을 바라볼 때, 애정 어린 존재로 바라보겠습니까, 아니면 단죄의 눈으로 바라보겠습니까?’ 대상이 항상 인간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의 신비 속으로 들어갑니다. 삶 속에서 하느님은 사람들과 동행하기에, 우리도 그들의 삶의 조건에서 출발하여 그들을 동행해야 합니다. 자비로서 그들을 동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는 사제의 입을 빌려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라는 말을 하게 합니다.” “이것은 또한 고백성사의 위대함이기도 합니다. 상황에 따라 판단하도록 하고, 하느님을 찾고 그분의 은총을 갈망하는 사람을 위한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 식별할 수 있게 합니다. 고백소는 고문실이 아니라 자비의 장소이고, 거기에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자극하십니다. 실패한 결혼생활에 낙태까지 한 한 여성의 경우가 생각납니다. 그 여성은 재혼하여 지금은 다섯 자녀와 함께 평화롭게 살고 있습니다. 낙태는 그녀에게 엄청난 짐이 되었고, 진정으로 참회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자 했습니다. 고백성사를 주는 사제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낙태, 동성 결혼, 피임과 관련한 문제만 고집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저는 이런 것들에 관해 많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점에 대해 저를 질책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에 관해 말을 할 때, 우리는 어떤 상황 안에 있는지에 대해서도 말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는 그것을 알고 있고, 저는 교회의 아들로서, 계속해서 말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교의적이건 도덕적이건 (교회의) 가르침들은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선교사목은 고집스럽게 제시하는 많은 교리들을 무차별적으로 전달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선교 형태의 선포는 본질적이고 필요한 것에 집중됩니다. 열정적으로 더 강하게 끌어 댕기는 것과 엠마오의 제자들처럼 마음을 뜨겁게 하는 것에도 집중됩니다. 따라서 새로운 조화를 모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의 도덕적 건물은 종이로 만든 성()처럼 무너질 위험이 있고, 복음의 신선함과 향기를 잃고 맙니다. 복음적인 제안은 더 단순하고 깊고 발산적이어야 합니다. 이런 제안들에서 도덕적인 결과들이 나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우리의 설교와 설교 내용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름답고 진실한 강론은 구원 선포와 함께 이루어진 첫 선포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보다 더 견고하고 깊고 확실한 선포는 없습니다. 그런 다음에 교리를 가르칩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도덕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하느님의 구원적인 사랑의 선포는 도덕과 신앙에 앞서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는 가끔 이런 질서가 뒤바뀐 듯합니다. 강론은 목자와 그의 백성을 가까이에서 만나게 하는 시금석입니다. 강론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원의가 열정적으로 살아있는 곳을 찾기 위해 공동체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의 메시지가 개별적으로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몇 가지 측면으로 축소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182년 만에 첫 수도자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은 182년 전인 1831, 카말돌레 수도회 출신의 그레고리오 16세 교황 이후 첫 번째 교황입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오늘의 교회에서 수도자들의 구체적인 자리는 무엇입니까?”

수도자들은 예언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길을 선택했고, 성부께 순종하고, 가난, 공동체 생활, 정결한 삶으로 그분을 닮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서원은 장난으로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컨대 공동체 생활은 지옥이 되고 정결은 독신자의 삶의 방식이 되고 맙니다. 정결서원은 생산적인 서원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수도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셨다는 것을 증거하고, 그분의 충만함 속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예언자로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수도자는 결코 자신의 예언직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예전자적인 기능과 교계 구조가 맞물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교회의 교계제도에 상반된 입장을 취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항상 긍정적인 한 가지 제안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려워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성 안토니오 아빠스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은수자와 남녀 수도자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언자가 된다는 것은 때로 뭐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큰 소리로 말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언직에 대해 어떤 이는 소란을 피우고 난장판을 만든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사실 그의 카리스마는 누룩과 같습니다. 예언자는 복음의 정신을 선포합니다.”

 

교황청 기구, 시노드, 그리스도교 일치주의

교계와 관련하여 교황께 질문합니다. “교황청 기구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교황청 기구들은 교황과 주교들에게 봉사함으로써 개별교회와 주교회의들을 도와줍니다. 도움을 주는 기구들입니다. 그러나 때로 이것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을 때, 감사기구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로마에 도착해서 정통성의 부족을 고발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이런 상황들은 지역 주교회의에서 연구해야 하는 부분이고, 로마는 유효한 도움만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상황들은 현지에서 더 잘 다룰 수 있습니다. 교황청 기구들은 중재만 할 수 있을 뿐 상호중재나 관리는 할 수 없습니다.” 저는 교황께 지난 62934명의 메트로폴리탄 대교구장들에게 팔리움을 얹어 축복하시며, ‘최고에 봉사함으로써 조화롭게 성장하는일치된 교회로 나가는 길로서 시노드의 길을 강조하신 점을 상기시켜 드렸습니다. 제 질문입니다. “베드로좌와 시노드와의 조화는 어떻게 이루는 것입니까? 일치의 전망 안에서 어떤 길이 실천적입니까?”

대중과 주교들과 교황이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시노드의 정신은 다양한 차원에서 살아내야 합니다. 아마도 시노드의 방법론을 바꾸어야 할 시기인 것 같습니다. 지금의 시노드는 너무 정체된 것 같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 일치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데, 특별히 정교회 형제들과 그렇습니다. 그들을 통해 주교단의 의미와 시노드 전통에 관한 의미를 더 배울 수 있습니다. 서방 교회가 분열되기 전, 초세기 때 교회를 어떻게 통솔했는지, 그 시기에 어떤 결실을 이루었는지를 보면서 함께 성찰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일치의 관계 속에서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서로를 잘 알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서도 어떻게 다른 사람들 안에 은사의 씨앗을 뿌리셨는지를 인식하기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저는 베드로 수위권이 2007년에 서방 혼합 위원회’(Commissione Mista)에서 이미 시작하여 라벤나 문헌을 승인한 것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도 성찰합니다. 이 길을 계속해서 이어가야 합니다.” 저는 교회 일치의 미래를 교황께서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살폈습니다. 제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차이 속에서 일치로 걸어가야 합니다. 일치를 위한 다른 길은 없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길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여성의 역할은 어떻습니까? 교황께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여성에 관해 언급한 바 있습니다. 어떤 인터뷰에서는 교회 안에서 여성의 역할이 많이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남성주의적 분위기가 공동체 안에서 여성의 역할이 눈에 띌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제기되었던 문제들을 되짚으며 아직 여성신학에 대한 깊은 이해는 없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교회 안에서 여성의 역할은 어때야 합니까? 오늘날 여성의 역할이 눈에 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교회에서 보다 강력하게 여성의 현존을 느낄 수 있도록 공간을 확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치마 입은 남성주의가 하나의 해결책이라고 할까봐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여성은 남성과 구조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성의 역할에 관한 논의를 할 때 종종 남성주의 이념의 영향을 받은 것을 느끼곤 합니다. 여성들은 자신이 직면해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데 말입니다. 교회는 여성의 존재와 역할이 없이 진정한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여성은 필수적입니다. 마리아는 여성이고, 주교들보다 더 중요합니다.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은 그녀의 존엄성과 역할을 혼동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여성의 이미지를 더욱 심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 깊은 여성신학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 안에서 여성의 기능에 관한 보다 나은 성찰이 있을 수 있습니다. 순수한 여성주의는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있는 장()을 필요로 합니다. 오늘의 도전은 바로 이것입니다. 교회의 여러 분야에서 소신껏 활동하는 여성의 구체적인 자리에 관한 성찰이 필요한 것입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

2차 바티칸 공의회는 무엇을 실현했습니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저는 길고 논리정연한 답을 기대하면서 앞서 하신 말씀에 비추어 물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받은 인상은 교황께서는 공의회를 논의할 여지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기에 중요한 무언가를 논의하듯이 길게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현대문화에 조명하여 복음을 다시 읽는 기회였습니다. 복음에 근거한 쇄신된 운동을 잉태했습니다. 그 결과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전례만 상기해도 충분합니다. 전례개혁 작업은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에서 출발하여 복음을 다시 읽는 것처럼 백성에게 한 하나의 봉사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연속적이고 단절적인 해석학의 노선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오늘날 실현되고 있는 복음 낭독의 역동성이 공의회 덕분이고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전례운동인 Vetus Ordo의 전례처럼 특수한 문제들도 있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선택은 이 부분에 민감한 일부 전문가들 덕분에 신중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Vetus ordo의 관념화와 그의 도구화 위험에 대해 우려됩니다.”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찾고 발견하기

프란치스코 교황의 오늘날의 도전들에 관한 견해는 대단히 불균형적입니다. 몇 년 전에 쓴 글에는 현실을 보기 위해서는 신앙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현실을 단편적인 조각으로 보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회칙 믿음의 빛(Lumen fidei)에 나타나는 주제들 중 하나기도 합니다. 저는 리우데자네이루의 세계청년대회에서 하신 프란치스코 교황의 연설 중에도 이와 관련한 몇 가지 내용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인용하면서, “하느님은 실존을 통해 오늘날에도 당신을 계속해서 드러내고 계십니다.”; “하느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라는 이 문장들은 이냐시오의 표현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찾고 발견하기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황께 묻습니다. “교황 성하,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찾고 발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한 말은 잠깐의 가치를 지니는 것입니다. 과거 혹은 미래에 하느님을 찾는 시도에 대해서 말입니다. 하느님은 분명 과거에 계셨던 분으로, 과거에 당신을 새겨 두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약속을 통해 미래에도 계십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가 오늘이라고 부르는 시간에도 구체적으로현존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만은 하느님을 찾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야만적인 세상에 대한 오늘날의 불만은 때로 교회 내부에서 순수한 보존과 방어를 위한 수도회 설립을 독촉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오늘 안에서 만나야 합니다.”

하느님은 시간 속에서 역사적인 계시를 통해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시간은 약속에 개입하고, 공간은 그것을 구체화합니다. 하느님은 시간 속에서, 진행 중에 있는 약속 안에서 발견됩니다. 시간에 비해, 혹은 장소나 약속들에 비해 권력의 공간들을 특권화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공간을 점령하기보다 약속들을 실행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시간 속에서 당신을 드러내고 역사의 과정에 현존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새로운 역동성을 창출하는 특권적인 행동들입니다. 그래서 인내로 기다릴 것을 요청합니다.”

모든 것들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 유레카의 경험은 아닙니다. 실제로, 하느님을 만나기를 바랄 때, 우리는 경험적인 방식으로 즉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렇게는 하느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엘리야가 경고한 대로 가벼운 미풍 속에서 그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느끼는 것은 이냐시오 성인이 부른 영적인 감각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이냐시오는 순수체험 저편에서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영적인 감각에 열려 있기를 청했습니다. 관상적인 태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사건과 상황에 대해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감각이 필요합니다. 이런 좋은 여정에 있다는 징표는 깊은 평화, 영적인 위로,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 안에서 모든 것을 보는 데 있습니다.”

 

확신과 오류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 유레카의 경험은 아닙니다. 역사를 읽는 여정에 관한 것으로서 오류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찾고 발견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항상 불안정한 지대에 있다는 뜻입니다. 누군가 확실히 온전하게 하느님을 만났다고 한다면, 불안정한 주변에서 일어나지 않았기에 좋은 것이 아닙니다. 제게 이것은 중요한 열쇠입니다. 누군가 모든 질문에 완벽하게 응답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이 그와 함께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거짓 예언자입니다. 신앙을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이용하는 것입니다. 모세처럼 하느님 백성의 위대한 지도자들은 언제나 의문의 공간을 두었습니다. 우리의 확신만이 전부가 아니라, 주님께 자리를 내어 드렸습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불안정 하다는 것은 참된 모든 식별 속에 내재해 있고, 영적인 위로에 열려 있습니다.”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찾고 발견함에 있어서 위험은 너무 분명한 의지와 인간적이고 교만한 확신으로 하느님은 여기에 계신다.’고 말하는데 있습니다. 우리의 잣대에 맞는 신()만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바른 태도는 아우구스티누스적인 것입니다. ‘그분을 발견하기 위해 하느님을 찾고 끊임없이 그분을 찾기 위해 그분을 발견합니다.’ 종종 성경에서 보듯이 닥치는 대로 찾기도 합니다. 이것은 신앙의 위대한 교부들이 한 경험으로, 우리의 모델이기도 합니다.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11장을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브람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신앙만으로 길을 나섭니다. 우리의 모든 신앙의 선조들은 약속한 것을 멀리서 바라보며 숨을 거두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가고, 걷고, 하고, 찾고, 보는 등...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는 업적의 서()가 아닙니다. 만남을 모색하는 모험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찾아 만나러 오시도록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항상 앞에 계시고, 그분이 우선이시기 때문입니다. 안토니오씨, 하느님은 당신의 고향 시칠리아의 아몬드 나무 꽃과 같습니다. 가장 먼저 피는 꽃 말입니다. 예언서들을 읽어 봅시다. 하느님은 그를 여정 중에, 길을 가면서 만납니다. 여기에 대해 혹자는 이것은 상대주의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상대주의적입니까? 그렇습니다. 잘못 알아들으면, 무차별적인 범신론의 일종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적 의미로 알아들으면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놀라움 그 자체이고, 그래서 어디에서 어떻게 그분을 발견할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그분과 만나는 시간과 장소를 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남을 식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식별이 근본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개혁자가 되고 입법자가 된다면, 모든 것이 분명하고 안전하기를 바란다면,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과거의 전통과 기억은 하느님께 새로운 공간을 마련해 드리도록 용기를 주는데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누군가 항상 교육적인 해결책을 찾고, 교리적인 안정을 과장하여 지향하며, 잃어버린 과거를 고집스럽게 보상받고자 한다면 정체되고 퇴보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는 신앙이 다양한 사유 중의 하나가 되고 맙니다. 저는 교의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의 삶 안에 계시고, 각자의 생활 속에 현존하십니다.’ 비록 누군가의 삶이 엉망이라고 하더라도, 사치와 마약 혹은 다른 어떤 것으로 파괴되었다고 하더라도 하느님은 그의 삶 안에 계십니다. 모든 인간적인 삶 안에서 그분을 발견할 수 있고 찾아야 합니다. 비록 누군가의 삶이 가시덤불과 풀로 가득하다고 하더라도 좋은 씨앗이 자랄 수 있는 공간은 항상 있습니다. 하느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는 긍정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황의 이런 말씀을 들으며 저는 예전에 베르골료 추기경이 쓴 하느님은 도시 속에 이미 계시며 모든 사람 사이에 활기차게 섞이어 그들 각자와 하나 되어 현존하신다.’는 글이 생각났습니다. 이냐시오 성인이 영신수련에서 쓴 글을 저는 다른 방식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하느님은 우리의 세계에서 일하고 활동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황께 묻습니다. “우리는 긍정주의자가 되어야 합니까? 오늘날의 세상에서 희망의 징표들은 무엇입니까? 위기의 세상에서 긍정주의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긍정주의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심리학적인 태도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히려 앞서 인용한 대로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11장에서 읽었던 희망이라는 말을 더 좋아합니다. 교부들은 엄청난 어려움을 극복하며 계속해서 나아갔습니다. 희망은 로마서에서 언급하듯이 절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의 첫 번째 수수께끼를 생각해 보십시오그 순간 저는 잠시 공주의 수수께끼 대목을 기억했습니다. 희망을 대답하는 것입니다. Nella cupa notte vola un fantasma iridescente. / Sale e spiega l’ale / sulla nera infinita umanità. / Tutto il mondo l’invoca / e tutto il mondo l’implora. / Ma il fantasma sparisce con l’aurora / per rinascere nel cuore. / Ed ogni notte nasce / ed ogni giorno muore! 희망을 바라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희망은 무지개빛 환상이고 새벽과 함께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환상도 속임수도 아닙니다. 신학적인 덕목의 하나이고 그래서 결정적으로 하느님의 선물이기에 오로지 인간적인 긍정주의로 축소할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은 희망을 속이지 않기에 자신을 거부할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약속입니다.”

 

예술과 창의성

저는 희망의 신비에 관해 말하기 위해 투란도트(Turandot)를 인용하는 것에 놀랐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예술적 문학적 기준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알고 싶었습니다. 교황께서는 2006년에 위대한 예술가들은 비극적인 현실과 인생의 고통을 미()로 표현할 줄을 아는 사람들이라고 한 말을 상기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예술가와 작가들을 좋아하시는지를 물었습니다. 그 중에 (제가 좋아하는 사람과)공통된 인물이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저는 많은 예술가와 작가들을 좋아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와 휠더린(Friedrich Hölderlin, 1770-1843, 역주: 독일의 서정시인)을 대단히 좋아합니다. 휠더린의 작품 중에 대단히 아름다운 저자의 할머니 생일을 위한 서정시가 생각납니다. 그 시는 제게 영성적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소년이 약속한 것을 지키려고 한다.’는 구절로 끝납니다. 제게 충격을 준 것은 저도 제 할머니 로사를 매우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시를 통해 휠더린은 자신의 할머니를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께 의탁하고, 예수님은 그에게 지상에서의 친구가 됩니다. 아무도 이방인으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약혼자(I Promessi Sposi)도 세 번을 읽었고, 지금도 다시 읽으려고 책상위에 올려져 있습니다. 만조니(Alessandro Manzoni, 1785-1873, 역주: 낭만주의 소설가, 극작가)도 제게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할머니는 이 책의 서두를 외우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 코모 호수의 물줄기는 산을 자르지 않고 흐르는 두 줄기 사이에서 남쪽으로 향하고 있다(Quel ramo del lago di Como, che volge a mezzogiorno, tra due catene non interrotte di montià)’ 홉킨스(Gerard Manley Hopkins 영국 1844-1889)도 매우 좋아했습니다.”

회화에서는 카라바조를 칭송합니다. 그의 작품들은 제게 말을 합니다. <백십자가>를 그린 샤갈도 좋아합니다.”

음악에서는 당연히 모차르트를 사랑합니다. (Do)로 시작하는 그의 미사곡 Et incarnatus는 어느 것과도 비견할 수 없습니다. ‘너를 하느님께로 인도합니다!’ 클라라 하스킬(Clara Haskil)이 연주한 모차르트를 좋아합니다. 모차르트는 저를 충만하게 합니다.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감상만 해야 합니다. 베토벤을 감상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프로메테우스 적으로 좋아합니다. 가장 프로메테우스적으로 연주하는 사람이 제게는 푸르트벵글러(Wilhelm Furtwängler, 1886-1954: 독일의 지휘자)입니다. 그리고 바흐의 수난곡들도 있습니다. 바흐의 작품 가운데 마태오에 의한 수난(<마태 수난곡>)에서 베드로의 눈물 Erbarme dich(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를 가장 좋아합니다. 탁월합니다. 다른 차원에서, 내적으로 똑같지는 않지만, 바그너를 사랑합니다.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습니다. 1950년 스칼라 극장에서 푸르트벵글러가 연주한 4부작이 가장 좋다고 생각됩니다. 1962년 크나퍼츠부슈(Hans Knappertsbusch, 1888-1965)가 지휘한 파르시팔(Parsifal)도 좋습니다.”

영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봅시다. 펠리니의 <>은 가장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은 작품일 것입니다. 그 영화는 암시적으로 성 프란치스코에게 헌정되는 것 같아 동질감을 느낍니다. 제가 10-12살 때 마냐니(Anna Magnani)와 파브리치(Aldo Fabrizi)의 모든 영화들을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좋아한 또 다른 영화는 <열린 도시> 로마입니다. 저의 영화에 관한 조예는 특별히 저희 부모님들이 저를 데리고 자주 영화관을 찾곤 했던 데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저는 비극 예술가들을 좋아합니다. 특히 고전에서 말입니다. 세르반데스가 돈키호테 이야기를 칭찬하기 위해 청년 카라스코의 입을 빌려 말하는 대목이 아주 좋습니다. ‘아기들은 손 위에서 놉니다. 소년들은 그것을 읽습니다. 청년들은 그것을 이해하고, 노인들은 그것에 대해 칭찬합니다.’ 제게 이것은 고전을 정의하는 좋은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분의 이런 기준들에 매료되고 있었고, 그의 예술적 선택의 문을 통해 저도 그분의 삶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졌습니다. 아마도 긴 여정이 될 것입니다. 영화에서는 이탈리아 신현실주의적인 작품 <바베트의 향연>(Il pranzo di Babette)이 포함될 것입니다. 제 머리 속에는 교황께서 다른 여러 기회에 언급하신 잘 알려지거나 알려지지 않은 지방의 다양한 작가들과 작품들이 생각났습니다. Martín Fierro di José Hernández에서부터 Luigi Orsenigo의 위대한 탈출에서 코스타(Nino Costa)의 시()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말레귀(Joseph Malègue)와 페난(José María Pemán)도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단테와 보르헤스는 물론 Adán Buenosayres, El Banquete de Severo ArcángeloMegafón 혹은 전쟁의 저자 마레샬(Leopoldo Marechal)도 생각났습니다. 특별히 보르헤스가 많이 생각났었는데, 이는 베르골료가 무염수태(Inmaculada Concepción) 콜레지움 소속 산타 페(Santa Fé) 학교에서 28세의 문학교수로 있을 때 보르헤스와 인연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베르골료는 고등학교 마지막 2년 과정에서 문학을 가르쳤고, 그의 학생들에게 창의적인 글쓰기를 하도록 했습니다. 저 역시 교황과 비슷한 경험을 한 바 있습니다. 그분과 비슷한 시기에 로마의 마씨모 재단 소속의 학교에서 BombaCarta를 설립했고 그것에 대해서 교황께 말씀드렸습니다. 끝으로 저는 교황께 경험을 들려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한 가지 살짝 위험한 것이 있었습니다. 저는 엘 시드(El Cid)를 학생들에게 공부하라고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은 로르카(García Lorca)를 읽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생들에게 엘 시드는 집에 가서 공부하라고 하고,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좋아하는 작가들에 대해서 들려주었습니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La casada infiel처럼, 혹은 La Celestina di Fernando de Rojas와 같은 고전처럼 더 자극적인 문학작품들을 읽고 싶어 했습니다. 순간적인 매력으로 이런 것들을 읽으면서, 점차 일반적인 문학과 시의 맛도 음미하고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로 옮겨가기도 했습니다. 제게는 큰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계획을 세웠지만 계획대로 하지 않고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자연스럽게 진행했습니다. 이런 방식은 제게 잘 맞았습니다. 저는 엄격한 계획에 따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대략 어디에 도달해야 하는지 인식의 씨앗을 뿌리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들을 쓰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끝으로 내 아이들이 쓴 두 개의 이야기를 보르헤스에게 읽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저는 보르헤스의 비서를 알고 있었습니다. 제 피아노 선생님이었습니다. 보르헤스는 대단히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한 전집에 서문을 써 줄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렇다면, 교황 성하, 사람의 인생을 위해 창의성은 중요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웃었고, 저를 보면서 예수회원에게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예수회원은 창의적이어야 합니다.”고 대답했습니다.

 

한계와 노동자들

그러므로 예수회원에게 창의성은 매우 중요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제들과 «가톨릭 문명»의 협력자들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예수회의 문화사업과 관련하여 중요한 세 가지 특성에 대해 언급한 바 있습니다. 지난해(2012) 614일을 떠올려 봅니다. 당시에 우리 그룹 모두와 함께 한 자리에서 세 가지를 언급하셨습니다. 대화, 식별, 그리고 한계입니다. 그 중에서도 마지막 한계에 대해 특별히 바오로 6세 교황이 예수회원들에게 한 유명한 연설을 인용하며 강조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어디든, 더 어렵고 힘든 분야에서, 생각의 기로에서, 사회의 틈새에서, 인간의 강렬한 요청과 복음의 영속적인 메시지 사이에서 대립할 때, 거기에는 언제나 예수회원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몇 가지 명확하게 할 부분이 있어 프란치스코 교황께 질문했습니다. “저희에게 말씀하신 한계에 적응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한계를 향해 나가야 합니다. 한계들을 집으로 가지고 와서 페인트칠을 하고 그것에 적응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라는 말씀이 무엇을 의도하신 것입니까? 정확하게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신 것입니까? 이 인터뷰는 예수회 잡지사 대표 그룹 간 협의에 따라 계획된 것입니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까? 그들이 우선으로 두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제가 <가톨릭 문명>에서 말한 세 가지 키워드는 예수회의 모든 잡지들로 확산될 수 있습니다. 잡지의 특성과 목적에 따라 각기 다른 양식으로 수용되어서 말입니다. 제가 한계라고 하는 것은 특별히 자신이 속한 상황에서 활동하고, 그에 관해 성찰함으로써 문화를 건설하는 인간을 위해 필요한 것을 말합니다. 언제나 작업실 안에서 생활하는 잠복된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의 것은 작업연대가 아니라, 걸어가는 신앙, 역사적인 신앙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을 역사로 드러내셨지 추상적인 진리의 개요로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일꾼들이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작업실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거기에서 문제들을 원래의 상황 밖인 집으로 가지고 가서 적응하고 페인트칠합니다. 한계를 집으로 가지고 가서는 안 됩니다. 담대하게 한계를 살아내야 합니다.”

개인적인 경험에 기초하여 몇 가지 사례를 들어줄 수 있느냐고 교황께 요청했습니다. “사회적인 문제들에 관해 말하게 되면,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마약을 빈곤지역과 일치시키고, 또 다른 것은 내부적인 문제를 알고 그것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거기에 가서 살기도 합니다. 아루페 신부님이 가난에 대해서 Centros de Investigación y Acción Social (Cias)에 보낸 편지가 있습니다. 편지에서 신부님은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똑같이 그곳으로 들어가 살아보지 않고는 가난에 대해 말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들어가서라는 말은 위험한 말입니다. 일부 수도자들은 하나의 유행으로 생각하여 식별 부족을 드러냄으로써 대참사를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말입니다.”

한계는 많습니다. 병원에서 생활하는 수녀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한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 덕분에 저도 살고 있습니다. 폐에 문제가 생겨 병원 신세를 졌을 때, 의사는 정해진 양의 페니실린과 스트렙토 마이신을 주었습니다. 옆에 있던 수녀는 매일 환자들과 함께 했기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약의 양을 세 배로 늘려서 주었습니다. 의사는 대단히 훌륭했고 항상 자신의 진료실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수녀는 한계 속에서 살면서 매일 모든 사람들과 대화했습니다. 한계에 적응한다는 것은 먼 위치에서 말하는데 익숙해진다는 뜻이고 진료실에 자신을 가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것들도 필요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경험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처럼

이제 교황께 중요한 문화적인 한계로서 인간학적인 도전도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묻습니다. 인간학은 교회가 전통적으로 기준으로 삼았고, 세속적인 지혜와 경험의 결실로 견고한 기준이 되고 있는 언어입니다. 교회가 대상으로 삼는 인간을 더 이상 이해하거나 충분히 고려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과거와는 달리 인간을 다양한 영역으로 분류하여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 역시 사회의 큰 변화와 인간 자신에 대한 방대한 연구 덕분입니다.

교황은 이 부분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가서 소성무일도서를 가지고 왔습니다. 라틴어로 쓰인 많이 낡은 소성무일도서였습니다. 연중 27주간 금요일의 독서기도를 펼쳤습니다. 레린스(Lérins)의 성 빈첸시오의 Commonitórium primum를 제게 읽어 주셨습니다. ita étiam christiá nae religiónis dogma sequátur has decet proféctuum leges, ut annis scílicet consolidétur, dilatétur témpore, sublimétur aetáte(“그리스도교의 교의도 이 법률을 따라야 합니다. 세월이 가면서 견고해 지고, 시간이 흐르며 발전하며, 나이를 먹으며 깊어져 증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황께서는 계속해서, “레린스의 성 빈첸시오는 시간이 흐르면서 성장하고 견고하게 되는 인간의 생물학적인 발전과 시대를 거슬러 전수하는 신앙의 유산(depositum fidei)을 두고 비교합니다. 바로 여기에 시대에 따른 인간에 대한 이해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인식도 깊어갑니다. 아무런 문제없이 노예제도가 있고, 사형제도가 있었을 때를 생각해 봅시다. 따라서 진리의 이해 속에서 인간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주석가들과 신학자들은 교회의 자기평가가 성숙하도록 도와줍니다. 다른 학문들과 그 학문의 발전도 교회가 이런 이해 속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예전에는 효과적이었으나, 지금은 가치와 의미를 잃은 부차적인 교회의 규범과 개념들이 있습니다. 변화 없이 준수해야 할 비석으로서 교회의 교리적 관점은 길을 잃은 것입니다.”

그 밖에, 모든 시대에 걸쳐 인간은 자신을 더 이해하고 잘 표현하고자 모색합니다. 따라서 시간과 함께 인간도 자신을 감지하는 방식을 바꿉니다. 한 가지, 사모트라케가 나이키(니케, 승리의 여신)를 조각하면서 표현했고, 카라바조와 샤갈, 그리고 달리의 작품에서 표현한 인간도 있습니다. 진리를 표현하는 형태들도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변화하는 의미 속에서 복음 메시지의 전수를 위해 필요합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연구하고, 당연히 이 연구는 실수도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예컨대 토미즘의 독창성이 일어나던 시절이 있었는가 하면, 사유가 쇠퇴하는 시절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토미즘이 꽃을 피우던 시절과 쇠퇴하던 시절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불행히도 토미즘이 쇠퇴하던 때의 교과서로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인간을 생각함에 있어, 교회는 독창성을 지향해야지 쇠퇴를 지향해서는 안 됩니다.”

사유의 표현이 언제 유효하지 않습니까? 사유가 인간적인 시각을 잃을 때거나 인간을 두려워하거나 자기 자신을 속이도록 내버려 둘 때입니다. 시레네들의 노래에 넋을 잃은 율리시즈처럼, 혹은 호색한들과 무녀들의 대향연에 둘러싸인 탄호이저(Tannhäuser)처럼, 아니면 클링저(Klingsor) 감독의 바그너의 오페라 제2막에 등장하는 파르지팔(Parsifal)처럼 자신을 잃고 맙니다. 교회의 사유는 순수함을 회복하고 그 가르침을 발전시키고 심화하기 위해 현대인들이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항상 고민해야 합니다.”

 

기도하기

교황께 선호하는 기도 방식에 관해 마지막으로 물었습니다. “매일 아침 성무일도를 바칩니다. 시편으로 기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 다음에 미사를 드립니다. 묵주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제가 정말 좋아하는 기도는 저녁 찬미기도입니다. 비록 피곤하여 다른 생각을 하고, 때로는 기도하며 졸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저녁 7-8시 사이에 저는 성체조배를 위해 성체 앞에 머뭅니다. 그렇지만 치과의사를 기다리는 동안, 혹은 하루 중 여러 순간에도 머리로는 기도를 합니다.”

제 기도는 언제나 암송기도입니다. 많은 기억과 암기가 있고, 제 역사의 기억도 있고, 주님께서 당신의 교회와 개별교회에 하신 업적에 대한 기억도 있습니다. 제게 있어 기억은 이냐시오 성인이 말씀하신 영신수련첫 주에 있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와의 자비로운 만남입니다. 그래서 제게 묻습니다. ‘저는 그리스도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그리스도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스도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냐시오가 은인들을 기억하며 했던 사랑을 얻기 위한 관상(Contemplatio ad amorem)에서 언급한 기억입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저를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을 제가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분을 잊을 수 있으나, 그분은 결코 저를 잊지 않으십니다. 기억은 근본적으로 예수회의 심장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은총의 기억입니다. 신명기에서 말하고 있는 하느님과 당신 백성 간 계약의 근거가 되는 하느님 업적에 대한 기억입니다. 이 기억이 저를 아들이 되게 하고 아버지가 되게 합니다.”

 

* * *

저는 이 대화가 아직도 계속될 것임을 알지만, 교황께서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분의) ‘한계들을 괴롭힐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819, 23, 29일 세 번에 걸쳐 모두 6시간이 넘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대화 내용의 연속성을 잃지 않기 위해 끊지 않고 적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인터뷰라기보다는 대화를 했습니다. 질문들은 엄격한 정의를 기대하고 압박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언어도 우리는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를 오가면서도 매번 그것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누었습니다. 아무런 기계적인 요소는 없었고 대답들은 대화를 하는 가운데 생각을 확장하면서 나왔고, 그 속에서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함축적인 방법을 찾았습니다.

 

안토니오 스파다로 S.I. - <가톨릭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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