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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문 쌍용자동차 희생자 분향소 앞 225일간의 기도를 마치며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로마 5,5)

 

 

1. 눈물 많은 기도가 쉼 없이 이어졌다. 권력과 자본이 아무렇게나 내다버린 이들이 손을 모아 기도했고 더 가난한 이들에게 자신들의 곁을 내주었다. 위로받아야할 이가 오히려 위로했고, 상처 받은 이가 다른 이의 상처들을 싸매줬다. 상처 받은 치유자(治癒子)의 진료소, 돌려받을 길 없는 무상(無償)의 사랑을 배운 학교, 세상의 고통이 하느님의 고통임을 온몸으로 고백한 신앙고백, 바로 대한문의 225일이다.

또한 이 225일은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아우성을 창검으로 틀어막다 멸망해간 어리석은 옛 왕조들의 폐허를 선명히 내다봤던 예언자의 눈동자다. 대한문에서 목도한 권력과 자본의 민낯은 그야말로 추악하고 참담했다. 사람 대신 재물을, 공정 대신 불의한 권력을 택한 이들의 말로가 얼마나 역겨울지 능히 짐작되는 자리였다. 예언자는 이미 그들에게 종말을 고했다.

 

2. 77일간의 옥쇄파업과 171일간의 철탑 고공농성, 41일 그리고 21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까지, 다시 일터로 돌아가려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분향소 철거도, 무덤 같은 화단도, 공권력의 무자비한 탄압도 그들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그 의지가 우리를 한자리에 불러 모았고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화답하게 했다. 희망이라는 깃발 아래 쉼 없이 기도했고 눈물로 함께 길을 헤쳐 왔다. 아니, 권력의 거짓 약속 앞에 신실하고 흔들림 없는 인내로 이 자리를 지킨 우리 모두는 이미 희망이다. 그렇게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았다.(로마서 5,5)

 


 

3. 225일간의 이곳 대한문에서의 기도는 불에 달궈진 돌멩이가 아니라 달궈진 돌멩이를 집어 삼킨 예언자의 뱃속이다. 달궈진 것은 식기마련이나 달궈진 것이 훑고 지나간 자리는 상처로 남아 내내 기억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기도를 멈추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예언자는 이제 제 뱃속에 들어앉은 기억으로 삶을 이어갈 것이다. 그리고 이 기억이 또 다른 생명들을 살릴 것이다. 상처의 기억이 생명의 씨앗으로 거듭났다.

 

4. 동료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분향소를 대한문에 설치한 이래 다행스럽게도 행렬 같은 쌍용차 노동자들의 죽음은 멈추었다. 하지만 잠시 주춤했던 죽음의 그림자는 다시 가장 약한 자들을 엄습했다. 9개월 남짓한 박근혜 정권 출범 이래 벌써 한명의 비정규직 노동자와 다른 한명의 하청 노동자가 우리 곁을 떠나갔다. 대선 전 철새처럼 분향소와 장기투쟁 사업장들을 방문해 늘어놓은 정치인들의 약속들, 국민행복시대를 외치며 쌍용차 사태를 해결하겠다던 박근혜의 공약 모두 그의 전태일 동상 앞의 헌화처럼 한낱 기만적인 퍼포먼스였음은 이미 자명하다. 약속이행은 고사하고 그가 노동자들에게 돌려준 대답은 분향소 강제철거와 불법 연행이었다. 자신이 쏟아내는 모든 말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제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5. 채 일 년도 되지 않은 박근혜 정권이 쏟아낸 온갖 추문은 시대의 과오인 동시에 불안한 내일의 예시다. 쌍용차 노동자들을 비롯한 노동자 대중에 대한 폭력적 탄압은 물론, 국가 권력기구들의 조직적인 선거개입이라는 정권의 태생적 한계로도 모자라 자신들의 불의한 뿌리를 은폐하려는 역사왜곡, 전교조 법외 노조 통보와 진보정당의 해체 시도, 진실을 밝히려는 이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논조를 흐리는 광범위한 여론 조작까지, 상식에 어긋나고 역사에 반한 추태는 이루 다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반성은 고사하고 도리어 역정을 내는 제왕적 태도 역시 대통령으로서의 자격 없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6. 우리가 요구하는 지도자의 기본적 소양은 최소한의 상식과 국민의 고통에 대한 경청이다. 불행하게도 이 정권은 그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갖추질 못했으며 절반의 국민을 오히려 적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이곳 대한문에서 매일 같이 드려졌던 미사는 오늘로 끝이 나지만 우리의 기도는 멈출 수 없다. 끝이 아니라 또 다른 기도의 시작이다. 이제 우리의 기도는 이 오만불손하고 불의한 정권에게 탄압받는 노동자 대중뿐만이 아니라 변두리로 내몰린 목숨들, 진실과 공정을 위해 헌신하는 모든 선의의 사람들과의 더욱 넓고 강고한 연대로 거듭날 것이다. 그들 한가운데가 우리의 유일한 거처다.

 

7. 다시 힘차게 길을 나서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발걸음에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기도한다. 더불어 아무것도 내줄 것 없는 우리 사제들을 기꺼이 동료로 맞이해준 동지들과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울어준 모든 이, 시민들과 교우들, 수도자들 모두에게도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고통이 있는 한 우리의 기도와 희망은 멈추지 않는다.

 

 

20131118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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