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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소식
2013.01.31 20:13

2013년 봉헌생활의 날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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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봉헌생활의 날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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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하느님을 드러내는 축성봉헌생활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요한 1,9)으로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다음 40일째인 오늘, 교회는 주님 봉헌축일을 지내며 주님 성탄과 공현을 마무리합니다. 이 시기 동안 교회는 인간의 모습으로 직접 우리와 함께 하시길 원하신, 아주 작고 가난하고 단순한 탄생으로 시작된 하느님의 커다란 인간사랑이 드러남을 기념합니다. 하느님은 아기 예수께 대한 동방박사들의 경배(마태 2,1-12)와 요셉과 마리아를 통한 예수의 봉헌(루카 2,22-40)을 통해 점차로 세상에 알려지며. 또한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예수의 모습(마르 1,9-11)을 통해 더욱 분명해집니다.

 

이러한 성경 대목들을 살펴보면, 하느님께서 아기 예수를 통해 이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커다란 신비의 과정에 성모 마리아, 동방박사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세상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한 길잡이입니다. 그들은 동방박사들을 예수께로 이끌어 하느님을 경배케 한 별과 같은 존재요 길잡이로, 우리로 하여금 “참 빛”을 만나게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부르심에 온전히 자신을 봉헌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시어 거룩하게 만드신다는 것을 믿고 따르는 이들의 삶인 축성봉헌생활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커다란 의미를 발견합니다.

 

두 번의 큰 선거가 있었던 지난 한 해 우리에게 가장 익숙했고, 또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은 힐링, 곧 치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모두 깊은 불안과 상처로 신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언설들이 난무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통과 불신의 상처, 대립과 반목의 상처, 단절과 갈라짐의 상처, 무관심과 배반과 미움의 상처가 너무 크고 아픕니다. 멀리 내다보아야 할 가치의 상실로 인한 불안, 바라보고 따를 수 있는 길잡이와 함께 길을 걷는 동반자들의 부재로 인한 불안이 너무 깊고 아득합니다. 이러한 불안과 상처는 변하지 않는 진정한 가치를 제시하며 삶의 길을 비추는 영성에 대한 목마름, 다름과 차이를 넘어서는 친교의 삶에 대한 배고픔, 그리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헌신을 통해 구체화되는 사랑에 대한 갈망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게 합니다. 그것들은 우리 인간이 지닌 근본적인 욕구로 우리의 삶을 이끌어 주는 푯대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힐링, 치유는 그러한 영성에 대한 목마름과 친교에 대한 배고픔, 그리고 사랑에 대한 갈망을 채울 때 비로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것이 곧 구원입니다.

 

인간의 참다운 삶의 길을 제시하는 진정한 영성, 그리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포함하여 어떤 구분과 가름도 없는 헌신적 사랑으로 이룬 친교의 삶은 바로 예수의 실존과 활동 그 자체입니다. 예수의 삶은 철저히 하느님을 중심에 두고 그분을 알기 위해 끊임없이 탐구한 신비가요, 그렇게 알아내어 하나 된 하느님을 선포한 예언자요, 사람을 섬기며 공동체를 이루어 봉사한 시종의 모습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드러낸, 하느님께로 향하는 길을 보여준 길잡이요 동반자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실존과 활동으로 인간이 지닌 근본적인 목마름과 배고픔, 그리고 갈망을 채워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힐링, 치유이며, 곧 구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참 별이며, 동시에 “참 빛” 그 자체이십니다.

 

교회는 축성봉헌생활을 일컬어 “예수님의 실존과 활동의 기념비”(봉헌생활 22)라고 합니다.  축성본헌생활이라는 이 기념비는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게끔 돕는 물건이 아닙니다. 이 기념비는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기념비입니다. 왜냐하면 축성봉헌생활은 바로 예수를 철저히 따름, 즉 복음에 드러난 예수의 삶을 그대로 지금 여기에서 산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예수의 삶을 늘 현재화하는 것이 축성봉헌생활의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철저히 따름으로 그의 기념비가 된다는 것은 바로 세상에 하느님을 드러내는 일이며, 그것이 바로 축성봉헌생활자들의 존재이유입니다.

 

다양한 모습으로 축성봉헌생활을 하고 있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을 중심에 두고 탐구하는 신비가요, 그분을 선포하는 예언자요, 그분과 사람을 섬기는 시종으로서 살아감으로써 우리 인간의 참 삶의 길인 예수의 실존과 활동의 기념비가 되어 하느님을 드러내라는 요청에 기꺼이 응답합시다. 그리하여 교회와 세상에, 특히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심고 우리 사회를 위한, 가난한 이들을 위한 봉사자요 예언자가 되도록 그들을 초대합시다. 그리고 사랑하는 교형자매와 교회의 모든 구성원 여러분, 축성봉헌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이 참으로 신비가요, 예언자요, 시종으로서 이 세상에 하느님을 드러내는 길잡이요 또한 하느님을 향한 동반자가 될 수 있도록 축성봉헌생활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이해, 기도와 배려를 부탁드립니다.

 
한국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회장
살레시오회 남상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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